야당 땐 매사 ‘대통령 탓’, 이젠 책임 회피 궤변
마스크 수급, 中유학생, 대구병상 부족… 언론이 진작 경고했지만
뒷북대응 전문가 의견보다 정치적 고려를 우선했다면 무능보다
더 용서받기 힘들 것
이기홍 논설실장
과거 참사나 재난이 닥칠 때마다 “이명박 탓” “박근혜 탓”이라며
정권을 흔들어댔던 친문 세력들은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놓고 쏟
아지는 문재인 정권 비판을 대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까.
‘아, 매사를 대통령 탓으로 몰아붙이는 건 참으로 비이성적인 행태
였구나’라며 반성을 할까, 아니면 ‘그때와 우린 다르다’며 억울해할
까. 필자는 사태 초기만 해도 야당이 문 대통령의 책임이라며 공세
를 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설령 현 집권 세력이 매사를 정권 탓으로 몰아붙인 전력이 있다고
해도, 보수 세력은 그런 악습을 끊고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는 성숙
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랐다.
그런데 매 변곡점마다 뒷북 대응을 하면서, 온갖 궤변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드는 집권세력의 행태는 “정권 탓하는 악습을 없애자”는
주장을 펼 의지를 약화시킨다.
요즘 집권세력은 문 대통령 책임론을 막기 위한 총력 선전전에 돌
입한 양상이다. 그들이 주로 동원하는 논리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
된다.
즉 ①중국발 외국인 입국 차단을 안 했다고 비판하는데, 중국에서
오는 한국인을 그냥 놔둔 채 막아봤자 실효성이 없으므로 안 하는
게 맞다 ②감염자가 많은 것은 방역정책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진
단을 신속히 많이 하기 때문이며 이는 오히려 문 대통령의 치적으
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등이다.
집권세력이 총선 때까지 집중 전파할 것으로 보이는 이런 논리들은
맹점이 많다. ①번은방역의 기본을 모르는 주장이다. 미세먼지가
극심한 날, 아무리 창문을 닫아도 공기는 들어온다는 이유로 창문
을 다 열어놓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완전 밀폐는 불가능하다 해도 창문을 닫아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맨살로 땅에 넘어지는 것 보다 옷을 입고 넘어지는
게 상처가 덜하지 않은가.
한중 간에 엄청난 인적 교류가 있다는 걸 차단 불가 이유로 들기도
하는데 입국자 차단은 확산 초기 단기간만 단행했으면 되는 일이었
다. 중국발 외국인은 차단하고 한국인은 자가 격리 또는 관찰했으면
됐다.
한중 간 인적 교류는 어차피 급격히 줄고, 중국 내 감염도 후베이성
을 제외한 베이징 등 대부분 지역은 곧 통제 국면에 접어들어 일시
적으로만 차단했으면 됐는데 이제는 다 실기했다.
친문들은 초기엔 확진자가 적다면서 정권의 대응을 칭송하더니 환
자 수가 늘어나니 이번엔 진단을 많이 해서라며 “이렇게 투명하게
진단 시스템을 운영하는 우리 대통령”을 칭송한다.
하지만 선진화된 진단·방역능력을 현 정권의 공적인 양 자랑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메르스 사태 이후 역학조사관
제도를 정착시키고, 음압격리병상 수를 늘리고, 응급실에 선별진
료소를 만들었다.
격리된 사람들, 문 닫은 의료기관에 예산을 지원하는 제도도 메르
스를 계기로 생겼다. 그런 시스템 개선과 민간 전문가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지 이 정부의 공로는 아니다.
마스크 수급, 중국인 유학생 입국, 대구의 병상을 비롯한 의료 인
프라 부족 등 그간 심각한 문제가 된 이슈들은 현실화되기 최소
수일 전에서 몇 주 전에 언론이 경고하고 대비를 촉구했던 사안
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마이동풍 하다가 실제 현실로 닥치고 나
서야 허둥댔다.
물론 여기까지는 무능과 비효율의 영역이다. 이런 걸 다 대통령
탓이라고 비난하는 건 좌파들의 악습을 되풀이하는 행태다.
하지만 만약 정권 핵심부에서 정략적 고려에 의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이는 정말로 대통령 책임이
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한발 외국인 차단 늑장 결정, 입국 차단 중국 전역으로의 확대
거부 등에 시진핑 방한 등 방역의 본질에서 벗어난 고려가 개입
됐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무능과 게으름 차원을 넘어서서 정치적 이
익을 위해 국민 건강을 위협한 행위에 해당한다.
의사가 게으르거나 지식이 짧아서 수술을 잘못하는 건 무능의 차
원이지만, 치료 이외의 다른 것을 염두에 두는 바람에 수술 방법을
잘못 선택했다면 이는 범죄다.
최고 결정권자의 판단은 본질 이외의 다른 것을 염두에 두면, 즉
사가 끼면 흐려진다.
게다가 최근엔 신천지와의 ‘정의로운 전쟁’으로 이슈를 몰고 가 방
역실패 책임론을 덮으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독재시대에나 있을 법한 권력의 개입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신천지 강제 수사가 신도들을 숨게 해 방역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용기 있게 반대했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몇 시간 후 대검에
강제 수사를 요청하는 뉘앙스의 공문을 보냈다.
“윗선 요구”라는 게 관계자 설명인데 국정조사나 검찰 수사로 그
경위가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국민들은 정권의 책임, 신천지의
책임 등을 각각 합리적 비율로 배분해 판단하고 있다.
매사를 정권 탓으로 몰아가는 구태가 사라지고 온 국민이 정부를
응원하며 위기를 헤쳐 가는 사회가 되려면 집권세력부터 더 이상
정략적 의도를 개입시켜선 안 된다.
그런 의지를 보여줄 확실한 방법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추미애 법무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의 행태에
문 대통령이 분명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