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Tag

2020. 3. 14. 07:42 카테고리 없음

각자도생의 최종병기

 

[중앙선데이] 입력 2020.03.14 00:26

 

 

이훈범 중앙일보 컬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그야말로 ‘아포리아(απορία)’가 이런 건가 보다. ‘막다른 골목’ 또는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난관’을 뜻한다는 그리스어 말이다. 가뜩

이나 마스크 너머 숨이 가쁜데, 이 땅의 위정자라는 인간들이 제 국

민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다.

퍼펙트스톰 앞에 내몰린 국민
대통령은 희망 바이러스 말뿐
생존 바이러스 찾는 건 국민 몫
심판 매워야 다음 도생이 쉽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바이러스는 감염자들만 위협하지

않는다. 가까스로 구한 마스크 하나에 위태로운 안전을 담보하고

있는 국민들도 서서히 질식시키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위축되고, 이로 인해 가계와 영세 자영업자는

물론 항공과 정유 등 주요 기간산업에 이르기까지 실물경제가 빈사

상태로 빠져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이것이 곧 금융 부실로 이어져 사상 초유의 금융·실물 복합 위기가

우려된다는 경고가 예사롭지 않다. ‘퍼펙트 스톰’이란 무시무시한

용어조차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그럼에도 이 땅의 위정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입에는 발린 말을

달고서, 눈은 정권 유지라는 잿밥에만 향해 있다. 그러니 말은 비수

가 되어 국민 가슴에 박히고, 길 잃은 발길이 국민 목을 지르밟는 것

이다.

바이러스 확산의 주요 고비 때마다 예언이라도 하듯 짜파구리 파안

대소나 “곧 종식” “세계가 평가” 같은 봉창 두드리는 발언을 하는

신공을 보여준 대통령은,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날 “희망 바이

러스”로 화답해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언제나처럼 그럴듯한 말만 있을 뿐 ‘어떻게’가 없는 허무 개그로 국

민 무력감의 면역력을 강화시켰다. 그런 대통령 밑에 “바이러스 확

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 “의료진 마스크 부족

은 넉넉히 쌓아두고 싶은 그들의 마음 때문”이라는 놀라운 상상력의

보건장관이 있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옳다거니 잘됐다, 멀리 있는 종교집단에 책임을 돌리려다가 바로 눈

앞 콜센터를 보지 못한 서울 경기 지자체장들도 있으니 말 다했다.

선데이 칼럼 3/14

 

이런 와중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뭔지도 모르고 상대 선수 빼고

선거 룰을 바꿨다가 뒤늦게 “의병” 운운하며 선거를 코미디로 만

드는 집권당의 후안무치,

 

비례대표의 중요성을 그렇게 역설하더니 정의와 공정이 뭔지 헷

갈리는 인물을 비례대표 1번으로 세우는 정의당의 위선을 말하는

건 공연히 입만 아프다. 속만 더 터질 뿐이다.

사실 이 땅의 백성들에게는 지금이 최악의 상황도 아니다. 더 큰

위기도 많았다. 위기는 늘 위정자들이 만들었고, 위기를 극복하는

건 늘 백성들 몫이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위기극복 유전자로

말이다. 이름하여 ‘각자도생 DNA’다.

각자도생이라는 말 자체가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순수 국내산

이다. 총 8억자에 달한다는 지식의 만리장성, ‘사고전서(四庫全書)’

에도 없는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9번 보인다. 한자도 상황에 따라

‘각자도생(各自圖生)’과 ‘각자도생(各自逃生)’ 두 가지가 혼용된다.

 

‘각자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다’와 ‘각자 달아나 스스로 목숨을 구

한다’는, 다르면서도 같은 뜻이다. 대부분 선조와 인조, 즉 왜란과

호란을 당했을 때와 어지러웠던 조선 말에 쓰였다. 결국 우리 민

족의 위기 극복 노하우다.

“경기 동쪽과 강원 북쪽에 통솔할 장수가 없어 그곳 백성들이 각기

살길을 찾아 골짜기에 모여있는데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대책이

없어 매우 미안합니다.” (선조 25년 11월 17일)

“종실(宗室)은 나라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야 할 사람들인데 난리

를 당하자 임금을 버리고 각자 살기를 도모한 것은 실로 작은 죄가

아니다.” (인조 5년 10월 4일)

“(극심한 가뭄으로) 금년 여름에는 논과 밭 모두 이앙하지 못했으니

(...) 처음에는 나물을 베어먹고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버텼습니다만

지금은 고향을 떠나 각자 살기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순조 9년 12

월 4일)

지난해 직장인들이 선택한 사자성어가 각자도생이었던 것도 뜬금없

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희망 바이러스를 찾는 것은 국민의 몫이었

던 것이다. 그것의 진짜 이름은 희망 아닌 ‘생존 바이러스’지만 말이다.

역사가, 그리고 현실이 말해주지만 우리 국민의 각자도생은 나 혼자

만 살면 된다는 게 아니다. 초근목피조차 나눠 먹었던 게 난리 통의

각자도생이었고,

 

코로나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태달라며 보내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의 성금 행렬이 오늘의 각자도생이다. 정부와 위정자들이

제시하지 못하는 살길을국민끼리찾아 나서는 게 각자도생이란 얘기다.

왜란 2번, 호란 2번을 겪고도 무능한 왕조를 무너뜨리지 않았던 이

착한 백성들도 이 시대에는 새로운 각자도생의 무기를 가졌다. 그리

고 궁극적으로 그 무기를 현명하게 사용해왔다. 투표권이다.

한 달 후 우리 국민은 또 한 번 그 최종병기를 쓸 것이다. 정부와 집

권당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만큼, 그것을 견제해야 할 야당이 제

욕심 좇느라 헛발질만 해댄 만큼 심판을 할 것이다.

 

그 심판이 참으로 매서웠으면 한다. 아니 매서워야 한다. 그래야 다

음 (역시 뻔히 예정된) 각자도생의 길이 조금은 수월해질 테니까 말

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컬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