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조국씨 부부의 거짓말 연기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20.06.05 03:18
영국 중서부 샌턴브리지라는 시골에서는 매년 11월 '세계 최고의 거짓말
쟁이 대회'가 열린다. 19세기 이 동네에 살았던 윌 릿슨이란 노인을 기리
는 행사로, 술집 주인이었던 릿슨은 늘 그럴듯한 거짓말로 손님들을 즐겁
게 했다고 한다.
누구나 이 대회에 출전할 수 있지만 정치인과 변호사는 참가할 수 없다.
"거짓말 기술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짓말 하면 정치인을
떠올리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은 대개 적극적인 거짓말보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말을 많이
한다. 이를테면 "위장전입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정치인은 "없다"고 하지
않고 "내 기억엔 없다"고 말한다.
나중에 위장전입 사실이 들통나도 거짓이 아니라 오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는 꾀가 많고 거짓말을 잘했다. 제우스가 "거짓말
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하자 헤르메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지만
진실을 덜 말할 수는 있다"고 했다. 정치인과 변호사는 현대판 헤르메스라
고 할 수 있다.
▶작년 한국인들은 역사에 남을 만한 거짓말쟁이 부부를 알게 됐다. 본인
출생연도부터 시작해 딸의 생일, 딸의 출생신고자까지 별 희한한 것들까
지 거짓말 의혹을 받았다.
1년에 한 번 만나는 5촌 조카에게 전 재산을 맡겨 투자시켰다는 조국씨
부부다. 조씨가 작년 기자회견하던 모습이 선하다. 그는 "저는 코링크라
는 이름을 이번에 알게 됐고 사모펀드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라며 "저는 물론이고 제 처도 이 사모펀드의 구성이건 운용이건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표정과 몸짓까지 동원됐다.
▶그런데 조씨 부부가 재작년 사모펀드 투자 당시 "세금이 2200만원 나
왔다" "불로수익이니 할 말 없음" "그러니 재산 총액이 늘었지" 같은 문자
를 주고받은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사모펀드가 뭔지도 모른다고 해
놓고 세금 나온 것과 불로소득을 얻은 것은 다 알고 있었다. 이 정도 거짓
말이면 자신도 거짓말하는지 모르면서 거짓말하는 것은 아닐까.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나타난다. 나쁜 거짓말을 하려면 얼굴이 달아오
르고 장난 거짓말을 할 때면 빙글빙글 웃게 된다. 그런데 조씨 부부의 특
징은 무슨 억울한 핍박을 당하는 듯한 표정과 어투로 거짓말을 한다는 것
이다.
웬만한 배우를 능가한다. 이들의 철면피 속 표정이 부부가 주고받은 문자
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비장한 얼굴로 탄 엘리베이터 철판 뒤에서 환하게
웃던 조국씨 표정처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5/20200605000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