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0.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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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對 윤석열
조선일보 조용헌 2020.08.10 03:16
조용헌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하지만 선거에는 가정법이 있다. 가상 대결이
그것이다. 대선에서 누가 붙을 것인가 하는 가상 대결은 여러 가지 구도가
성립할 수 있지만 독자들이 생각하는 흥미로운 구도 가운데 하나는 윤석
열과 이재명의 대결이다.
두 사람 다 스토리가 있다. 이재명은 밑바닥 인생에서 올라왔다는 스토리
가 큰 강점이다. 이재명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성남의 목공소에
취직한 것으로 알고 있다.
70대도 아니고 50대 후반 세대에 해당하는 사람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
하고 입에 풀칠하기 위해 목공소에 들어가야만 했다는 사실부터가 여러
가지를 말해준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은 어린이였던 이재명은 목공소에서 대여섯 살 위 형
들에게 수시로 얻어터졌다고 한다. 열서너 살 된 애가 목공소라는 거친 작업
환경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해야만 했을 것이고, 여러 이유로 수시로 얻어맞
았을 것이다.
이재명의 여동생 하나는 야쿠르트 배달을 하러 다니다가 차에 치여서 교통
사고로 죽었다. 이런 가정 형편과 생활이 한편으로는 기구하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후일 정치적인 강단과 투지를 기르는 단련장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이재명 정치 인생에서 큰 위기 중 하나는 내가 보기에 '점(點) 사건'이었다.
신체의 중요 부위에 점이 있냐 없냐 하는 문제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여기
서 자빠지는데 이재명은 깡과 운으로 돌파하였다. 그의 인생에 화룡점정
(畵龍點睛)의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윤석열은 아버지가 연대 교수였고 집안도 좋다. 학벌도 서울 법대다. 여기
까지는 좋았는데, 고시에서 아홉 번이나 낙방함으로써 스토리가 시작된다.
한약재 중에서 숙지황을 법제할 때 아홉 번 솥에다 쪄서 말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있다.
이걸 구증구포(九蒸九曝)라고 한다. 여러 번 찌는 과정에서 거친 기운이 빠
지고 약효가 증가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도 솥단지에 찌는 과정
이었다고 해석된다.
말이 그렇지 솥단지에 들어가 장작불에 달궈지는 과정은 엄청난 고독과 고통
이 따른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인생은 여기서 멈추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져야만 했을 것이다.
지금도 벼슬은 검찰총장이지만 희한하게도 솥단지에 들어가서 장작불로 계속
달궈지고 있는 독보적 팔자다. 정권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하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둘이 붙는다면 '반항'과 '항명'의 대결이다. 동물 관상으로 놓고 보자면
'스라소니'와 '황소'의 한판 대결이 될 것이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