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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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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2. 06:35 카테고리 없음

是是非非是是非

 

 

 

황성규 문화일보 논설위원

한시는 글자 수와 운율을 맞춘 정형시다. 글자 수에 따라 5언, 7언

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행수에 따라 절구나 율시로 나뉘기도 한다.

그리고 운(韻)의 위치에 따라 두운, 각운 등 규칙들이 있어 작법이

까탈스럽다.

 

그래서 개방적 성격의 시객들은 일정한 포맷을 벗어나 자유분방한

시를 짓기도 했다. 이른바 잡체시(雜體詩)다. 주전자나 접시 같은

데 빙 둘러 한자를 써 놓고는 기준 글자에서 시작해 한 바퀴 돌아

제1행이 완성되면 제2행은 두 번째 글자에서 시작하는 회문시

(回文詩)가 있다.

 

또, 글자를 분해하거나 가감해서 쓰는 파자시(破字詩)가 있는가

하면, 글 장난하듯 썼지만 붕당정치를 일삼는 권력층을 희롱하고

풍진 세태를 꼬집는 희작시(戱作詩)도 있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의 시 한 편을 보자. 시·비(是

非) 두 글자로만 된 칠언절구 중 결구는 ‘是是非非是是非’로 끝

난다.(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하니, 이것이 시비

로다) 시비는 덮어두고 호불호로 갈라치는 오늘날 같은 세상을

풍자한 한시다.

 

쌍관법(雙關法)을 이용한 작품 역시 잡체시의 일종이다. 위아래

행 또는 같은 행의 수미를 동음이자 등으로 조응시켜 짓는다. 삿

갓 시인 김병연이 함경 감사 조기영의 탐학을 고발한 칠언절구

도 그중 한 편이다.

 

‘낙민루하낙민루/ (2, 3행 생략) / 조기영가조기영’. 행마다 한가

운데 글자를 중심으로 좌우가 같은 음이다. 각 행의 첫 3자 낙민

루·조기영은 고유명사지만, 끝 3자는 훈과 음을 대응시킨 다른

한자다.

 

요샛말로 옮기면 ‘낙민루 아래 백성 눈물 떨어지니/ (중략) /

조기영 집안의 복(福) 어찌 오래 갈까’ 하는 뜻이다. 무의미해

보여도 ‘금준미주천인혈/ (중략) / 가성고처원성고’라며 변 사

또를 질타한 춘향전의 암행어사 이몽룡의 시처럼 비수가 들어

있다.

지난주 문화일보를 통해 보도된 ‘시무 7조’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30대의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진인(塵人)

조은산의 상소문은 잡체시를 연상케 한다.

 

그가 주청하는 시무(時務)는 ‘세금 경감, 이성(理性) 정책, 실리

외교, 자유 경제, 인사 만사, 헌법 존중, 자기 혁신’으로 압축된

다. 그중에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국토교통부 장관과 여당

전 대표, 현·전직 법무장관의 이름으로 2행시처럼 쓴 구절도

있다. 시적 표현 속에 비수가 번뜩인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