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5. 07:41
카테고리 없음
더는 국민을 궁지로 몰지 말라
[중앙선데이] 입력 2020.09.05 00:30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피호봉호(避狐逢虎)’란 사자성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뜻이다. 나쁜 일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큰 일을 당한
다는 말인데, 살 만큼 산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일이다.
‘전호후랑(前虎後狼)’은 좀 더 극한에 몰린 경우다. 호랑이와 이리의 앞뒤
순서를 바꾸면 더욱 들어맞는다. 이리가 덤벼들어 전력으로 앞문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뒷문으로 호랑이가 들어오니 살아날 길이 없는 형국이다.
여우 피하니 호랑이 만난 격
법무장관 정의는 정권 안보
대통령까지 국민 갈라치나
국민 화나면 가죽도 못 남겨
요즘 이처럼 궁지에 몰린 느낌을 받는 사람이 나만이 아닐 성싶어 하는
얘기다. 우선 우리의 법무장관 덕분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위선자’라는
조국 여우를 간신히 몰아냈더니, 추미애라는 호랑이가 들어와서 거침없
이 혼을 빼놓는다.
여우는 그나마 변명이라도 했다. (사실은 변명만 했다. 그리고 지금도 변
명만 하고 있다. 며칠 전 아내인 정경심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는
증언 거부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148조만 300번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호랑이는 변명이고 뭐고 막무가내다. 두 차례 검찰 인사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다 자르고 정권 수사를 맡은 검사들을 모조리 좌천시
키는 강한 이빨과 발톱을 과시하고도, 태연히 “정의를 구하는 인사”라 뇌
까릴 수 있는 두꺼운 가죽을 가졌다.
‘드루킹 특검’ 수사 검사, ‘신라젠·라임’ 수사검사, ‘채널A 사건’ 감찰 검사
모두 사표를 내게 만든 걸 보면 그가 구하려는 정의가 무엇인 줄 알겠다.
아낌없이 몸을 날려 충성을 표시한 검사는 영전시켜 자꾸만 기어오르는
검찰 조직에 ‘줄 잘 서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는 걸 보면 더욱 명백하다.
‘정권 안보’가 그가 구하려는 정의인 것이다. 멀리서 보면 그렇다.
호랑이의 강한 이빨은 독설에서 더욱 빛난다. 호랑이는 적과 대화하지 않
는다. 그저 싸울 뿐이다. 청문회장이건 상임위 회의실이건 우리의 법무장
관이 성의 있게 답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전설적인 육두문자는 빼더라도 “번지수가 틀렸다” “소설을 쓰시네” “새삼
지휘랍시고” “언론의 관음증세”처럼 싸움을 거는 듯한 화법이 그의
주특기다.
선데이칼럼 9/5
그래도 여우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겠거니 했는데, 결국은 같은 부류였다.
아들의 ‘황제 탈영’ 소설은 정작 본인이 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보좌
관이 뭐하러 사적인 지시를 받느냐”는,
만 하루도 못 버틸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했다. 사랑하는 아
들, 결국은 자신을 구하는 게 우리 법무장관의 정의였던 것이다. 가까이
서 보니 그렇다.
그의 눈에는 오직 한 가지만 보이는 것 같다. 자신의 ‘다음 자리’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거지만, 그것은 서울시청을 거쳐 청와대에 이르는 것일
터다. 그렇지 않으면 부동산 해법에까지 오지랖을 펼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처럼 친문 권리당원들의 눈에 들으려 독기를 품고
무리를 할 까닭이 없다. 노무현 탄핵에 한표를 던졌던 전력 탓에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그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체급을 키워 청와대로 사무실을 옮기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그곳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호봉호, 전호후랑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지 않나 말이다.
전 정권의 국정 농단에 지친 촛불 민심 덕분에 일어선 정권이 호랑이가
돼 국민과 싸움을 벌인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이 외치던 ‘죽창가’를
우리는 기억한다.
“중요한 건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이냐다”라던 그의 말에
한일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은 모두 ‘토착 왜구’가 됐다.
선무당 국토장관이 아파트를 서민과 청년층에게 접근 불가의 영역으로
만들어 놓고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임대인과 임차인의 싸움판을 벌여
놓았다.
급기야 이제는 대통령까지 나서 ‘갈라치기’ 신공을 몸소 시전한다. 개신교
대 비개신교, 의사와 간호사 사이까지 갈라놓는다.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건지 두렵다. 자기들 말로는 한 번도 경험
해 보지 못한 나라라는데 좌충우돌 불안해 멀미가 날 지경이다. 오죽하면
“나라가 니꺼냐” 구호가 나오고, “백성과 싸우지 마소서” 상소가 올라오겠나.
그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호랑이는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두 명에게 해코지할 순 있으나, 결국은 죽어서 가죽만 남게 되는 게 세상
이치다. 루쉰(魯迅)이 그걸 말해준다.
“만일 호랑이와 만나면 나무에 기어 올라갔다가 호랑이가 배가 고파서
사라져 버린 다음 내려옵니다. 만약 호랑이가 언제까지나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나무에서 굶어 죽어야겠지만 그 전에 자기를 나무에 동여매 놓아
시체라도 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는 별도리 없이 먹혀버릴 수
밖에 없겠지만 이쪽에서도 한 번쯤 깨물어 줍니다.” (『양지서(兩地書)』)
지금까지 그래왔던 게 이 나라 백성들이다. 작고 무딘 그들의 이빨이
가소로울지 모르나 입이 여럿이면 다르다. 호랑이도 치명상을 피하지
못한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가죽은 걸레로도 못 쓴다. 더는 국민을 궁지로 몰지
말라. 가죽도 못 남기는 호랑이가 되지 않으려거든. 다시 말해 최악의 실
패 정권으로 역사에 남지 않으려거든 말이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