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정 건전성’ 강조하더니 느닷없이 전 국민 통신비 지원
동아일보 입력 2020-09-10 00:00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4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마련하는 2차 긴급
재난지원금 재원 중 8900억 원을 떼어내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통신비
명목으로 2만 원씩 나눠주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의 비대면 활동이 많아져 늘어난 휴대전화 요금을
메워준다는 명분이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여당은 그제 17∼34세 및 50세 이상 내국인에게 2만 원씩 6200억 원의 통
신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대상에서 배제된 국
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되자 하루 만에 ‘13세 이상 전 국민 일괄지급’으
로 확대해 청와대의 재가를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통신비 지원 대상자와 필요 예산은 4454만5000여 명, 8900억
원으로 44%씩 늘어난다.
재난지원금 ‘보편지급’을 요구하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7조 원대 4차 추
경 중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에게 5조 원을 선별
지원하고 나머지 2조 원 이상을 통신비, 장기 미취업 청년 지원,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 아동돌봄쿠폰으로 나눠줘 보편성을 보완한다는 발상이다.
불과 며칠 전 이 대표가 “재난의 고통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며 밝힌 선
별지급 원칙과 앞뒤가 도무지 맞지 않는다. 2차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에 대
해선 여야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론이 없다.
그러나 거듭되는 추경으로 국가채무가 급증해 국가 신인도 하락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회원국에 비해 한국
재정이 건전하다는 점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마저 “현실적으로 재정상 어려움
이 크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전 국민에게 2만 원씩 나눠주는 건 하락한 지지율을 의식한 포퓰
리즘이란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피해가 큰 자영업자·소상공인과 미취업 청년
을 우선 지원하는 건 상식을 갖춘 국민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결정
이었다.
모처럼 여권이 합리적 선택을 하나 했더니 며칠 만에 정치 논리를 좇아 세금을
제 돈처럼 쓰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일각의 불만을 잠재우겠다며 전액 빚
을 내 만든 예산을 잘게 쪼개 온 국민에게 살포하는 건 책임감 있는 정부와
여당이 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