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의 두 결말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말년에 쓴 ‘파우스트’는 파우스트가 젊음을 되
찾는 조건으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사후 영혼을 맡기는 계약을 한 후 벌어지
는 얘기를 담은 극시(劇詩)다. 19세기 유럽 예술계에 깊은 영감을 줬고 여러 작곡가
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저주’(1846), 샤를 구노의 ‘파우스트’(1859), 아리
고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스’(1868)가 대표적인데, 결말은 조금 다르게 각색됐다.
앞의 두 작품에선 파우스트가 사후 메피스토펠레스와 지옥으로 떨어지지만, 보이토
작품에선 파우스트가 지옥행의 메피스토펠레스와 달리 천상으로 오르는 것으로 끝난다.
베를리오즈와 구노는 파우스트에게 초점을 맞추고 테너에게 역을 맡겼지만, 보이토
는 어두운 음색의 베이스가 주인공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도록 했다. 대개의 오페
라에서 조연인 베이스가 주역을 맡은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국민에게 봉사”를 언급해 여의도 정
가에 파란이 일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각을 세우면서 이미 잠재적 대권 주자
로 부상해 여론지지도가 10% 안팎을 기록했는데 최근엔 15.1%까지 치솟았다.
그러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총장을 향해 “악마에
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라고 비판했다. 윤 총장을 “윤 서방파 두목”으로 부르는 민주
당 일부 의원의 저급함과 비교할 때 파우스트를 동원한 건 일견 수준이 있어 보인다.
윤 위원장이 거론한 악마는 맥락상 정치다. 바람에 휩싸여 정치에 뛰어들어봤자 지옥
으로 떨어질 것이란 악담이자 경고다. 그런데 그것은 베를리오즈·구노식 결말이다.
보이토식이 되면 달라진다. ‘메피스토펠레스’에는 파우스트가 “인간과 사랑을 해봤
지만 이상은 한낱 꿈이었다”면서 “정의를 지상에서 이루고 싶다”고 독백하는 장면
이 나온다.
‘파우스트 윤 총장’ 버전으로 바꾼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평생 검사로 일했지
만, 정의 실현은 꿈이었다. 이제 정의가 이뤄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파우스트가
마르게리트 덕분에 구원을 받게 되듯, 윤 총장이 악마와 거래를 했다 해도 민심을
얻는다면 보이토가 그린 파우스트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이미숙 문화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