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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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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7. 07:25 카테고리 없음

 

바지저고리·어릿광대 그리고 살아 있는 化石들

 

부총리 ‘어리광 사퇴 쇼’는 관료의 으뜸 톱니 망가진 표시

야당, 지금 시간표론 또 역사가 용납하지 않는 지각생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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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조선일보 논설고문

입력 2020.11.0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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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의 사표 소동은 하루 만에 어리광 한번 피워본 것으로 판명 났다.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씩씩대던 게 평소 그답지 않은 부자연스런 연기

(演技)였다. 차려 자세로 ‘인사권자 뜻에 맞춰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

고 복창(復唱)하는 모습이 훨씬 원래 그답다.

 

‘어리광’이란 ‘어리고 예쁜 짓으로 버릇없이 투정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어

리광 부리다’의 반대말이 ‘어른스럽다’다. 경제부총리는 직업 공무원의 우두

머리다. 직업 공무원은 국가 조직의 톱니와 같다.

 

이 톱니들이 모여 톱니바퀴를 구성하고, 이 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나라를

움직인다. 어른스럽지 못한 경제부총리의 어리광은 나라를 움직이는 톱니바퀴

의 가장 큰 톱니가 망가졌다는 뜻이다.

 

‘허수아비’와 ‘바지저고리’는 ‘뚜렷한 주견(主見)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두 말이 같은듯하지만 논밭에 세워진 허수아비는 참새 쫓는

구실은 한다. 바지저고리는 그런 구실도 못한다.

 

임금님 입장에선 자기 생각 없는 바지저고리가 부리기 수월하겠지만 어느 후

배가 바지저고리에게 마음으로 승복(承服)하겠는가. 이 정권은 부동산 정책

에서 실패에 실패를 얹는 층층(層層) 탑을 쌓았다. 이런 미련퉁이 고집불통

국토부장관·청와대 정책실장이 있나 했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늘렸다 줄였다 다시 늘린 재산세 파동에서 그들은 들러리를 섰을 뿐 실제론

대통령 혼자서 차 치고 포 치고 했다 한다. 그들 역시 바지저고리였다는 말

이다. 당 대표가 발의(發議)했는데도 결과가 그 모양이라면 그 또한 외롭고

고단한 외손바닥 처지다.

 

서해 공무원 실종·피살 사건을 논의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땐 외교장관

에게 아예 기별조차 하지 않았다. 바지저고리 취급한 것이다. 법무장관은 진

땅 굳은 땅 구분 못하고 틈만 나면 어디서나 좌판(坐板)을 벌이며 미운 짓을

도맡는 것 같다.

 

혼자서 통반장 다 하는 그도 누군가 위에서 줄을 당기면 팔다리를 휘젓는 꼭두

각시 혐의(嫌疑)가 짙다. 줄을 당길 사람이 대통령 말고 누가 달리 있겠는가.

 

이 정권 특유의 용인술(用人術)이 ‘어릿광대’의 기용(起用)이다. 마당극에서

어릿광대는 진짜 광대가 나오기 전 우스운 이야기를 풀거나 웃기는 짓으로 놀

이판을 어울리게 하는 역할이다. 무슨 일에 앞잡이로 나서 그 일을 시작하기

쉽게 해주는 바람잡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딱 그렇다. 청와대 담장에 걸터앉아 한 발은 청와

대 마당을, 다른 발로는 바깥세상을 딛고 남북 관계·한미동맹·한중 관계 등 민

감한 주제에 대해 갖가지 요언(妖言)과 예언(豫言)을 쏟아낸다. 책임을 따지면

‘나는 보수를 받지 않는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국내외에서 현 정권의 입장과 의도(意圖)를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는

인물로 여러 대접을 받고 있다. ‘영향력은 공직자 이상(以上)이고 책임은 없는

특별한 보직(補職)’이란 뜻에서 말 그대로 특보(特補)다.

 

이 정권 청와대와 내각에는 ‘살아 있는 화석(化石)’들이 즐비하다. 수억년 전

동식물과 그 흔적이 파묻혀 돌이 된 게 화석이다. 화석은 진화(進化)의 시계가

멈춘 상태다. 통일부장관은 학생운동의 민족해방(NL) 계열 출신이라고 한다.

 

그는 인사청문회 때 전향(轉向) 여부를 묻는 질문에 벌컥했고, 정권 핵심들 반

응은 더 요란했다. ‘전향’이란 ‘사상의 방향 전환’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 조어

(造語)다.

 

누구나 인생의 여러 계절을 통과하고 시대 변화와 만나 생각의 어떤 부분은 버

리고 어떤 부분은 숙성(熟成)시켜가며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선다. 화석이 돼버

린 인간은 더 깊어지지도 더 넓어지지도 더 높아지지도 못한다.

 

전향이란 한마디에 벌컥하는 것은 발전 단계를 밟지 못한 미성숙한 옛 생각과

사상을 ‘순수(純粹)한 상태’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 있는 화석’

이다.

 

현 정권의 경제·안보·사회보장·교육·환경·에너지·인구·성(性)평등 등의 모든

정책에서 1950년대 혹은 1930년대의 구(舊) 진보 냄새가 진동하는 이유다.

‘전진이라는 이름의 후퇴’이자 ‘진보라는 이름의 퇴영(退嬰)’이다.

 

눈에 뭐가 씌지 않고는 그럴 수 없는 사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권 안에

는 변화의 희망이 없다. 나라의 기운을 바꿔야 한다. 국민에게 대안(代案)이

필요하다.

 

야당은 무슨 시간표를 쳐다보고 있는가. 지금 시간표대로라면 이번에도 지각

생이다. 역사는 결석은 용납해도 지각생을 용납하는 법이 없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