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7.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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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영욕의 ‘색동 날개’
15일 인천국제공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계류장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뉴시스
1988년, 두 번째 민항인 아시아나항공이 탄생했다. 1988 올림픽과 1989년 시행된 해외
여행 자유화 조치가 계기가 됐다. 항공 수요가 폭발할 것에 대비해 전두환 정권이 제2
민항 허가를 내줬다. 호남 대표 기업 금호그룹이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5·18 원죄를 가
진 군사정권의 ‘호남 배려’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아시아나의 등장으로 대한항공 독점 체제가 무너지고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됐다.
아시아나는 새 비행기와 4년제 대졸 여승무원을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했다. 승무원
이 기내에서 마술쇼를 선보이고, 일등석에선 요리사와 소믈리에가 고급 음식, 와인을
직접 서비스했다.
기내식에 김치를 제공하고 여객기 내 전면 금연을 실시한 것은 아시아나가 세계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전 세계 최우수 항공사에 주는 ‘올해의 항공사’상을 네 차례나 받았
다. 참신한 이미지 덕에 아시아나 전속 모델은 ‘스타 등용문’이란 별칭을 얻었다.
▶대한항공과는 앙숙일 수밖에 없었다. 출발 때부터 조종사 스카우트 문제로 갈등을
빚고 노선 배분 문제로 내내 불협화음을 냈다. 후발 주자에 기존 항공사의 알짜 노선
을 강제 할당해준 일본⋅대만 정부와 달리 한국은 신생 항공사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아시아나는 내내 불만이었다.
그러다 대한항공이 괌 추락 사고(1997년), 런던 화물기 추락 사고(1999년) 등 대형
사고를 잇따라 낸 것이 아시아나엔 기회가 됐다. 대한항공이 신규 노선 배분 금지
조치를 당하는 동안 중국⋅일본⋅동남아 등의 국제선 신규 노선을 선점했다.
대통령 전용기 역할도 맡았다. 항공 노선망이 다양해지면서 수익성도 개선돼 한 해
영업이익이 6000억원을 웃돌기도 했다.
▶32년간 두 차례 큰 위기가 있었다. IMF 외환 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는 바람에 달러
빚 부담이 늘어나 부도 위기에 몰렸다가 코스닥 상장을 통한 자본 수혈로 위기를 넘
겼다. 두 번째 위기는 대우건설 인수였다.
그룹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자금난에 몰려 3년 만에 되팔면서
큰 손실을 봤다. 아시아나를 살리기 위해 여러 계열사를 매각하고, 기내식 사업부까지
팔았다. 그 여파로 2018년 기내식 공급이 중단되는 ‘기내식 대란’을 빚기도 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낸 아시아나도 해외여행 중단을 촉발한 코로나 태풍을 피하진
못했다. 앙숙이던 대한항공에 인수돼 32년 역사를 마감할 처지다. 정부는 세계 10
위 통합 국적 항공사가 항공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 될 것이라 말하지만,
소비자로선 독점 체제로의 회귀가 달갑지만은 않다. 태극·색동 날개의 합병에도
아시아나의 혁신 DNA는 살아남았으면 한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