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의 '검란'···오늘 전국 10곳서 평검사 회의 열린다
중앙일보 2020.11.26 00:39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직무배제) 조치
에 반발하는 검사들의 집단행동이 확산하고 있다. 대검찰청과 부산지검 동부
지청 평검사들이 25일 성명을 발표하면서 집단 반발한 데 이어 26일엔 대구
지검 등 전국 검찰청 10여 곳에서 평검사 회의가 열릴 전망이다.
평검사 회의는 2013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 사퇴와 관련해 서울서부지검 평
검사들이 소집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에 소집될 경우 7년 만의 일이 된다.
오늘 대구지검 등 평검사 회의 열듯
대검·부산동부지청 평검사는 성명
“윤석열 직무배제는 위법·부당
추미애, 검찰독립 침해 법치 훼손”
윤, 한밤 직무배제 정지 가처분 신청
조남관 총장 대행 “검사들 분노”
김수남 전 총장 “유신 시절 연상”
참여연대 “대통령이 해결 나서야”
대검 소속 사법연수원 34기 이하 평검사(검찰연구관) 30여 명은 이날 “검찰
총장 직무집행정지 처분은 위법, 부당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은 회의를 마치고 발표한 성명에서 “검찰총장은 검찰의 모든 수사를 지휘하
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며 법률에 의해 임기가 보장돼 있다”며
“수긍하기 어려운 절차와 과정을 통해 전격적으로 그 직을 수행할 수 없게 한
법무부 장관의 처분은 검찰 업무의 독립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위법하고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이 헌법과 양심에 따라 직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처분을 재고해
주길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평검사들도 이날 “사실관계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현시
점에서 검찰총장에 대해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배제를 명령한 것은 위법·부당
한 조치이며 이례적으로 진상 확인 전에 직무를 배제한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
다”고 밝혔다.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검찰총장 직무배제, 징계청구에 대한 부산지검
동부지청 평검사들의 일치된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다.
추 장관 취임 이후 검사들의 집단 성명 발표는 처음이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검란’으로 불리는 검사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복수의
검사에 따르면 25일 서울 서부지검과 청주지검 등 전국 검찰청 10여 곳에선
수석검사 회의가 열렸다.
수석급 평검사인 이들은 연수원 36기 검사들이 중심이다. "추 장관의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검찰청별로 26일 평검사 회의를 개최할 계획
이다. 한 검사는 “그동안 간헐적으로 추 장관 비판 여론이 조성됐을 때와는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 수준이 높아졌다”고 검찰 내 분위기를 전했다.
한 부장검사는 “평검사뿐 아니라 검사장 등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도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망에는 추 장관 비판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김창진(31기) 부산지
검 동부지청 부장검사는 “위법하고 부당한 징계권 행사를 좌시하지 않는 것이
국민이 우리에게 부여한 의무”라며 “다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며 선배 검
사로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검사들은 이 글에 100개 가까운 댓글을 달면서 동조의 뜻을 표했다.
정희도(31기)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정치인, 정치검사들의 심히 부당한 업무지
시를 그대로 이행하는 검사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현(30기) 제주
지검 인권감독관은 “총장 직무배제를 하려면 걸맞은 이유와 근거, 정당성과 명
분이 있어야 할 텐데 직무배제 사유 어디에도 그런 문구를 발견할 수 없다”며
“검찰 역사에 조종(弔鐘)이 울린 것”이라고 적었다.
윤석열 변호인은 고교 선배 이석웅, 대학 동창 이완규
전직 검찰총장들도 추 장관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유신 때 야당 총재의 직무를 정지시킨 것을 연상케 한
다”고 말했다. 유신 독재 몰락의 도화선이 됐던 1979년의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의원직 박탈 및 제명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검찰총장을 지냈던 법조계 인사도 “‘윤석열 나가라’고 등 떠미는
것이 검찰개혁이냐. 검찰의 적폐 수사 덕택에 출범한 정권이 검찰을 적대시하는
역설적 상황이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전직 검찰총장은 “누구는 장관의 법적 권한이라고 옹호하더라. 김정은
이나 히틀러도 북한 법이나 당시 독일 법은 준수했는데, 그러면 문제없는 거냐”
고 반문했다. 이어 “불법, 적법의 문제를 떠나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
라고 지적했다.
대검 중수부장을 역임한 전직 고검장은 추 장관을 겨냥해 “제 무덤을 파는 것
이고 망해가는 길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여 성향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징계심의 결과가 확정되
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대통령은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말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조남관 대검차장(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이날 대검을 방문한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들에게 “윤 총장의 직무배제와 관련해 일선 검사들의 분노와 우려가
상당히 걱정되는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윤 총장은 직무배제 첫날인 25일 법무법인 서우의 이석웅 변호사(고교
선배)와 법무법인 동인의 이완규 변호사(대학 동창)를 선임하고 밤 11시쯤
전자소송 심야 인터넷 접수를 통해 서울행정법원에 직무정지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앞서 10명 이상의 검찰 후배 출신 변호사가 윤 총장을 돕겠다고 자원했다고
한다.
정유진·김수민·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