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리한 자사고 죽이기에 제동 건 법원 판결
동아일보 입력 2020-12-21 00:00
지난해 자율형사립고 지정이 취소된 부산 해운대고가 부산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 1심에서 18일 승소했다. 부산지법 행정2부는 “부산
시교육청이 해운대고와 협의 없이 신설하거나 변경한 평가 기준과 지표는
해운대고에 현저하게 불리한 것”이라며 “이는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
으로 위법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전국의
고교 10곳이 제기한 소송 가운데 나온 첫 판결인데 교육당국의 무리한
지정 취소에 제동을 걸었다는 의미가 있다.
교육부와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주도한 자사고 무더기 지정 취소는 평가
기준부터 불공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5년 전 평가에서 60점이던 재
지정 통과 기준 점수를 70점으로 10점이나 한번에 올리고, 자사고에 불
리한 교육청의 재량평가 지표 점수 등을 늘린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
만 교육당국은 절차를 강행했다.
부산시교육청도 재지정 기준 점수를 10점 높이고 지적사항 최대 감점
기준을 3점에서 12점으로 4배나 올리는 평가 기준 변경을 시행하면서
도 해운대고와 제대로 협의하지 않았다가 패소했다.
해운대고는 커트라인(70점)에 미달하는 54.5점을 받아 지정이 취소됐
는데 학교 측에 불리하게 변경된 평가 지표가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면
최소한 63.5점을 받아 변경 전 기준 점수 60점을 충족했을 것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아직 2심과 최종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번 판결은 교육당국의 잘못된
결정을 사법부가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작년 자사고 재
지정 평가는 고무줄 잣대 논란으로, 평가를 빙자한 ‘자사고 죽이기’였다
는 비판이 많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까지 개정해 2025년 자사고, 외국
어고, 국제고 일괄 폐지까지 밀어붙였다. 6월에는 서울시 교육청이 대원
국제중과 영훈국제중까지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시켰다.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와 합의
가 필요하다. 교육당국은 공감대가 부족한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혼란과 갈등만 부채질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