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삐라 해결했으니 北 보답해야”… ‘김여정 하명法’ 확인해준 정세현
동아일보 입력 2020-12-26 00:00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의
대담에서 “(대북전단금지법 처리로) 삐라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적어도 북
한이 남측과 대화에 나설 수 있는 밑자리는 깔아놓은 것”이라며 “새해부터는
북한이 보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영 장관은 새해 북한의 대외행보와 관련해 “남쪽에는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을 해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정 수석부의
장의 발언은 정부여당이 강행한 대북전단금지법이 북한의 위협과 주문에 따른
‘김여정 하명법’임을 거듭 확인시켜 준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직속 통일정책 자문기관의 수장이 했다는 발언치곤 유
치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지만 이 정부 인사들의 대북 인식을 고스란히 대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작부터 “경찰과 군 병력이라도 동원해 전단 살포
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측이 성의를 보였다고 북한이 상응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
하는 것은 더더욱 유치한 착각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한술 더 떠 북한이 대화
에 나설 수 있도록
내년 2, 3월 열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 또는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장관도 “연합 훈련이 갈등이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사실
상 맞장구쳤다.
이대로라면 김정은 정권은 주민들을 동요시킬 전단 살포를 막은 데 이어 군사
적 걱정까지 덜어낼 판이다. 이러니 북한은 더욱 기고만장해질 뿐이다. 이처럼
남측이 허상에 빠져 스스로 길들여지고 있는 줄도 모르는 사이 국제사회의 비
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의회에선 한국의 집권여당을 두고 ‘자유를 제한하는(illiberal) 정당’이라
고 성토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렇게라도 남북관계를 진전
시켜 북-미 대화를 이끄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의 코웃음을 사고 국제사회의 신뢰까지 잃은 마당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과연 한국에 그런 역할을 맡기기나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