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기부’는 악행, ‘이익공유’는 선행인가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 2021-01-18 05:17
기업 목소리 외면한 ‘자발적 참여’
압박 다수가 느끼는 박탈감, 정치에 이용 말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코로나19로 이득 본 기업이 자발적으
로 참여하는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언급한 지 이틀 만에 민주당이 태스
크포스(TF)를 만들었다.
2017년 7월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
서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인상 카드를 갑자기 꺼낸 뒤 일사천리
로 세율을 높인 속도전을 떠올리게 한다.
이익공유제를 제안했다고 사회주의자로 몰아세울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동반성장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논의했다. 대기업이 협
력회사와 수입을 나누는 건 영국 롤스로이스사도 하고 있다. 이 대표 말
대로 기업과 거리를 두는 ‘팔길이 원칙’만 지킨다면 별문제 있겠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익공유제는 가진 자가 선의로 자기 몫을 조금 떼어주는 식이 아
니다. 제도를 설계한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현 정부 초대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의 설명은 이랬다. 첫째, 고위험산업에서 대기업과 협력
사는 같은 밸류체인(가치사슬)으로 묶여 있다.
한배를 탄 협력업체는 일종의 기업 내부자인 만큼 성과급을 나누는 건 이상
할 게 없다. 둘째, 이익공유제는 기부가 아니다. 기부라고 하는 순간 사회공
헌활동이 된다. 자발적 기부보다는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말한 사회연대세
나 부유세가 이익을 나누는 실질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코로나 같은 돌발적 일시적 변수로 기업이 수익을 냈어도 협력업체의
기여분은 인정돼야 한다. 기업이 밸류체인 안쪽에선 세금 형태로 이익을 의
무적으로 나누고, 밸류체인 바깥쪽에선 자발적 기부를 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다고 손실이 났을 때 보상해주는 장치 같은 건 없다. 이 카드가 정치적으
로는 먹혀 사회가 두 쪽으로 갈렸다. 지금은 자신이 남들보다 가난하다고 느
끼는 사람이 다수인 불안한 시기다. 부동산 주식 가격이 오르면서 자산 격차
도 커지고 있다.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소외감, 박탈감은 더 넓게 퍼진다. 중산층 이상도 막연
하게 자산 상승기에 소외되고 있다고 느낀다. ‘사람은 왜 불평등이 심할수록
자멸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나’라는 연구를 한
키스 페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에 따르면 실제 재산 규모와 상관없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재분배 정책을 지지한다. 그러니 현재의 편
가르기 국면서 유리한 쪽은 여당이다. 선거를 앞두고 뜬구름 잡는 이익공유제
가 툭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고, 돈 버는 부자는 따로 있다는 게 동학개미의 심리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람들은 먼 미래를 보기보다는 눈앞의 달콤한 유혹에 빠
지기 쉽다. 여권은 기업을 압박하며 만든 갈등구도를 4월 선거에 이용하려 할
수 있다.
이익공유제는 자발적 기부에 그치지 않고 사회연대세나 부유세로 확대될지
모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재산권이 침해되고 성장동력이 약해질 거라며
펄펄 뛰지만 정부가 이런 목소리에 귀를 닫은 지 오래다.
기업들은 법인세 인상보다 더 고약한 것이 자발성을 가장한 기부라고 생각한
다. 도대체 왜 기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기부를 하지 않을 자유가
배제된 상황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이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지난 정부에서 미르재단에 출연한 것과 현
정부에서 이익공유제에 따라 돈을 내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
기업인은 “돈을 걷는 쪽이 ‘나쁜 사람’이냐, ‘착한 사람’이냐의 차이 아니겠
느냐”고 했다.
현 정부는 착하게 걷어서 착하게 쓸 예정이니 지난 정부와는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르재단을 생각해낸 사람도 자기들은 전두환 정권의 일해재단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