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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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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26. 07:43 카테고리 없음

[분수대] 붉은 여왕의 가설

[중앙일보]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입력 2021.03.26 00:39

힘껏 달리던 앨리스가 물었다. “왜 계속 이 나무 아래에 있는 거죠?”

붉은 여왕이 답했다. “여기선 힘껏 달리면 제자리야. 나무를 벗어나

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유명한 루이스 캐럴이 쓴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밴 베일런은 이 거울 나라에

서 착안해 ‘붉은 여왕의 가설’(1973년)을 내놨다. 밀접한 관계의 서로

다른 두 종(種)이 영향을 미치며 공진화(共進化)한다는 것이다.

 

최근 황당한 이야기 하나가 경찰 내사까지 불렀다. 대통령의 백신 접종

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

(AZ)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는데, 온라인상에서 주사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이 퍼져나갔다.

경찰은 내사에 들어갔고, 방역 당국은 극력 부인했다. 말이 안 된다는 얘

기다. 불행히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대통령에게 백신 접종을

했던 간호사에게까지 이어졌다. “양심선언하라”는 협박전화까지 왔다.

 

소동의 원인은 하나다. 불신이다. 1호 접종 논란만 해도 그렇다. 지난 2월

26일 백신 개시를 앞두고 야당이 대통령이 1호 접종자가 돼야 한다고 목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원수가 실험대

상이냐. 국가원수에 대한 조롱이자 모독”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접종이 ‘정쟁’이 되면서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굴러갔다.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른바 ‘솔선수범’ 접종 자청 릴레이다. 정부가 각 지방에 꾸려진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코로나19 대응 1차 요원에 대해 우선접종을

허가했다.

 

그러자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과 권영진 대구시장, 박성수 송파구청장이

각기 “솔선수범하겠다”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정작 접종을 하루 앞두고 이들은 일제히 접종계획을 취소했다.

정부에서 “현장인력을 제외한 인력은 별도 지침이 있을 때까지 접종을 미뤄

달라”고 해서다.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은 이미 접종을 마친 상태였다.

 

끊이지 않는 백신논란을 보면서 붉은 여왕의 말이 떠오른다. 제자리걸음을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더 빨리 달리는 것이다.

신뢰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