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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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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14. 06:12 카테고리 없음

오적(五賊)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 4 월 13 일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할 때 찬성 또는 묵인한 대한제국 대신

다섯 명을 을사오적이라고 부른다. 내부대신 이지용·군부대신

이근택·외부대신 박제순·학부대신 이완용·농상공부대신 권중

현이다.

나라를 팔아먹었기에 도둑이라는 뜻의 적(賊)자를 붙였다. 을사

오적은 나라와 동족을 판 대가로 일본 귀족 칭호를 받으면서 권

력과 부를 누렸다.

을사조약은 1907년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는 정미조약,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는 경술국치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추가로

가담한 정미 7적, 경술 9적 명단도 있다. 세 명단에 빠지지 않은

인물이 이완용으로, 그가 이 나라의 대표 매국노로 기록된 배경이다.

오적은 1970년 김지하의 시로 다시 소환된다. 저항 시인 김지하가

사상계에 판소리를 계승한 담시(譚詩)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를 발

표했는데, 그 제목이 오적이었다.

김지하는 민족 반역자 대신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

차관을 다섯 도둑으로 지칭했다. 1960년대 후반 국민 다수가 가난

하게 살던 시절, 개발 독재 과정에서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한 대표적 인물과 직업군을 비판한 것이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로 시작하는

오적을 게재한 사상계 5월 호는 발간한 5000부가 모두 팔렸다. 그

러나 곧 사상계는 폐간됐고, 김지하와 편집인 등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을사오적과 김지하 오적의 영향을 받은 듯, 이후 사회 곳곳에서 3적,

적 등이 일반적 용어가 됐다. 2011년 미디어법 통과 후 야당에서 언

론 5적이란 명단이 나돌았고,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

는 탄핵 7적이 지목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국가 대표 축구팀이 졸전 끝에 패할 때마다 ‘대 일본 전 3적’

등 각종 명단이 인터넷 댓글창을 달구기도 했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를 한 뒤 사과

문을 발표한 2030 초선의원 5명을 친문 지지자들이 ‘초선 5적’이라

며 공격하고 있다.

친문 지지자들은 이들의 전화 번호를 공개하기도 했다. 문자 폭탄,

댓글 등 ‘양념’을 유도한 것이다. 결국 초선의원들은 사과문을 물

타기 하고, 당연히 해야 했던 쇄신 노력도 거두려 하고 있다.

오적 역할도 제대로 못 하는 듯하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