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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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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3. 20. 06:42 신문 칼럼 + 시사

孫鶴圭라는 이름의 동키호테
‘탈당의 변(辯)’은 악랄(惡辣)하기 그지없었다.
이동복
손학규(孫鶴圭) 씨가 드디어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가 19일 밝힌 거취 표명은 사실은 이미 예상되었던 행보였다. 사실은, 그래도 이날 필자가 손학규 씨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는 기수(旗手)가 되려는 일념으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참가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그 동안 나타난 민심의 동향은 우리 국민이 아직 나에게 그 같은 막중한 책임을 맡길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이 같은 국민의 정서를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절대 다수의 국민이 정권교체를 갈구하고 있고 또한 그 같은 정권교체는 한나라당이 주체가 되어서 이룩하는 것 외의 어떠한 다른 대안(代案)도 없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한나라당 안에 머물면서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심경으로 오는 12월의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함으로써 그 같은 절대 다수의 국민의 갈망에 부응할 생각이다.
그러나, 무능한 진보와 수구 보수가 판치는 낡은 정치구조 자체를 교체하기 위한 나의 신념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이를 위한 나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결국 손학규 씨로부터 그와 같은 말을 듣지 못했다. 그와는 반대로 그는 19일 한나라당 탈당을 결행했다. 그런데, 그의 ‘탈당의 변(辯)’은 악랄(惡辣)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軍政)의 잔당(殘黨)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殘滓)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도 이 말로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군정의 잔당’은 곧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朴槿惠) 씨일 터이고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는 현대그룹에서 잔뼈가 굵은 이명박(李明博) 씨일 것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실이 그렇다면 19일 손학규 씨의 ‘탈당의 변’은 그 행간(行間)에서 읽어야 할 의미가 더 있어 보인다. 요컨대, 그가 이번에 문제 삼은 것은 단순한 ‘경선 규칙’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근원적인 두 가지의 문제를 더 제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그가 요구한 것은 공정성을 구비한 ‘경선 규칙’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손학규 씨 자신을 후보로 공천할 수 있게 해주는 ‘경선 규칙’이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경선 규칙’은 어찌 되었던 간에 손학규 씨는 박근혜 씨나 이명박 씨가 후보로 공천되었을 경우에는 결코 이에 승복(承服)할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상식”이라는 철언(哲言)에 타당성이 있다면, 그가 이번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여 공천을 획득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당랑거철(螳螂拒轍)의 헛수고였다는 사실은 지극히 평범한 진리였다.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후보로서의 공천을 획득하기 위한 그의 공식ㆍ비공식, 합법ㆍ비합법의 ‘선거운동’은 이미 그가 경기도 지사 직을 그만 두기 훨씬 이전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작년 10월경부터 불붙기 시작한 사실상의 경선 운동의 전 기간을 통하여 그의 지지율이 5% 이상을 상회한 적이 없다. 그에게 무슨 남이 모르는 비법(秘法)과 신들린 재주가 있어서 앞으로 남은 몇 달의 기간 중에 그의 지지율을 이명박 씨의 40% 대는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 씨의 20% 대까지 끌어 올려서 지명대회에서의 투표를 통하여 공천을 획득하는 것을 욕심 내 볼 수 있는 위치까지 가 보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시실은, 19일의 탈당 소동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도전한 손학규 씨의 경우가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에서 비루먹은 말 잔등에 앉아 부러진 창(槍)을 들고 풍차(風車)에 도전했던 라만차의 동키호테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절감한다.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라든가, "한 때의 돌팔매를 피하려고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택할 수는 없다"라든가,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의 장래와 국민의 희망에 등을 돌릴 수는 없다.
한나라당을 위해 순교하기 보다는 국민을 위한 순교를 선택하겠다"라는 등의 그의 대사(臺詞)들이 소설에 나오는 동키호테의 허황(虛荒)한 세리프들과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필자는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 경선에서 그의 역할은 경선의 흥행성을 제고시켜서 이 같은 경선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공천후보의 상품가치를 제고시키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그는 몰랐다는 것인가.
그가 강원도 산사(山寺)에서의 며칠 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속세(俗世)로 돌아 와 밝힌 ‘탈당의 변’에서 그의 심경을 TV 드라마 ‘주몽’에서의 ‘주몽’의 심경에 견준 것은 그의 사리(事理) 판단 수준이 얼마나 너절한 것인지를 말해 주는 대목이다.
드라마 ‘주몽’의 스토리는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가의 픽션일 뿐이다. 자신이 한나라당을 떠나는 이유를 드라마에서 ‘주몽’이 부여를 떠나는 이유에 빗댄 것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자, 그는 과연 이제 한나라당을 떠나서 고구려(高句麗)를 창업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다가, 아마도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지금 궤멸(潰滅) 상태인 열린우리당 패거리들에게 보쌈질이나 당하여 이른바 ‘범여권 후보’로 둔갑(遁甲)을 하거나, 아니면, 제2의 이인제(李仁濟)가 되기라도 해서 지금 온 국민이 갈망해 마지않는 정권교체를 좌절시키기는 장본인(張本人)이라도 된다면 그는 그 엄청난 죄 값을 과연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는 “미래, 평화, 통합의 시대를 경영할 창조적 주도세력을 만드는 데 나 자신을 던질 것"이라면서 "나는 그 대한민국 드림 팀을 만드는데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드림 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 ‘드림 팀’에서 그가 맡겠다는 ‘밀 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거기서 그가 말하는 ‘밀 알’이란 거기에서도 또 그가 원하는 ‘경선 규칙’을 수용함으로써 반드시 그를 ‘대통령후보’로 옹립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인가. 만약 그 ‘드림 팀’에서도 그가 ‘대통령후보’로 ‘공천’이 보장되지 않을 때에는 그는 거기서도 또 다시 ‘탈당의 변’을 쏟아 놓을 것인가.

만약, 그가 말하는 그 ‘드림 팀’에서 그 자신이 ‘대통령후보’로의 ‘공천’이 보장되지 않는 데도 그가 이를 감내(堪耐)한다면 그러한 그의 행동과 이번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탈하여 탈당하는 그의 행동과의 사이에는 어떠한 형평성이 존재하는가도 문제가 아니 될 수 없다.
만약, 그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그것은 그동안 그가 한나라당 경선을 준비해 온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마음으로 경선에 참여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명박ㆍ박근혜 두 사람 중의 어느 한 사람도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되는 것을 저지시키기 위한 정치공작의 주역으로 용병(傭兵)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손학규 씨의 행보에서 무언가 악취(惡臭)가 느껴지는 소이(所以)가 여기에 있다. 지금 소위 여권(輿圈)의 동태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언론들은 손학규 씨의 한나라당 탈당 결행으로 지지부진한 여권 통합 논의가 새로운 추동력을 얻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도로 민주당’ 또는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비판을 벗어나, 손학규 씨가 통합에 새로운 명분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범여권에서 뜨고 있다고 한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여권의 통합 논의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차원의 정계개편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에서 당 사수(死守) 목소리가 줄고, ‘제3지대 창당론’이 좀 더 힘을 얻게 될 것으로 본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국민이 어떻게 보는가가 문제의 관건이다. 우리 국민의 입장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다”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인제ㆍ정몽준(鄭夢準)ㆍ김대업(金大業)의 악몽(惡夢)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번 손학규 씨의 ‘변절(變節)’과 그 ‘변절’을 스스로 변명하는 둔사(遁辭)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는 이제 국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날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기다릴 것이다. [끝]

[이동복 전 명지대 교수]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