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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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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8. 12:57 一石 컬럼
북한 동포들과의 만남 (1)

리비아의 동쪽 거의 끝쪽에 “데르나” 라는 조그만 도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제협력회사”가 위치 하여있었고
약 삼천명의 근로자가 G to G 계약으로 나와 일하고 있었읍니다.

데르나에는 우리 건설 현장이 있었기에 자연히 우리 사람들과
교우하는 일이 가끔씩 있었습니다.

리비아는 땅의 넓이가 우리 대한 반도의 9.7 배가 되고, 지중해 연안
부근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기후를 누리고 살고 있으나, 내륙으로
들어가면 사막이고 더 들어가면 검은 피부의 사람들입니다.

워낙 넓은 땅의 나라이기에 이. 삼백 키로미터 간격으로 휴게소 같은 곳이
있고, 그 곳을 지나치게 되면 안전운전 하는 것도 그렇고 너무 지루한
운행이 되기에 거의 모든 통과객 들은 휴게소에서 맹물이나 “홍차” 또는
우리가 지은 말로 “걸레 빵”을 사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남.북한 동포끼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대게는 우리들이 홍차나 맹물을 대접하는 게 상례이고, 서로가 한국사람
들 끼리이니까 리비아인 들도 그냥 그렇게 보아 줍니다.

우리 근로자들이 대게는 먼저 말을 걸게 되는데, 거의 첫 번째 질문이

“야, 너 이 달에 얼마나 “싸인” 했냐 “ 입니다. 그들은 못 알아듣고 되 묻습니다.

“싸인이 뭐이가 ?”, “얌마, 너 이 달에 송금 얼마나 했냐고 ?” “느이 마누라 하고
새끼들 먹여 살려야 하쟎어 ?

그들은 다시 못 알아 듣습니다. “송금이 뭐이가 ?” “무슨 송금이라는 게 있네?”

그들은 현지에서도 수당이 없다는 게 솔직한 답이었고, 대신 “우리는 조국이 다
알아서 해주니까 그런 거 필요 없어” 하지만 얼굴 색은 솔직합니다.

이러한 실정이 얼마 후에 바뀌게 되었는데,

얼마가 지나서 만났을 때 그들은 묻지 않은 답을 먼저 하였습니다.
“야, 우리도 이번부터는 느네 나라 돈으로 백만원 송금 했어, 야…”

밖으로 나와서 일하는 시간이 있는 그들에게는 교육이라는 게 있다는 말입니다.


2002년 05월 17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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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