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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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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 3. 13:42 一石 컬럼


알파벹의 순서가 아니다.
“B” 와 “D”는 한번 밖에 없는데, “C”란 놈은 수없이 많다.
“B” 는 Birth 이고 “D” 는 Death 이며, “C”는 Choice 를 줄인 말이다.

“B” 와 “D” 는 숙명적이기에 연습을 할 수가 없지만, “C”는 사람에
따라서는 가끔씩 연습의 기회가 있다. 그 연습도 너무 길게 하면
다른 “C”로 가기에 늦어져 헤어나지 못하는 게 십상이다.

우리가 보성 51회로 다 같이 만났던 것은 자의든 타의든 “C”에 속한다.
지금 와서 보성51이라는 “C” 를 탓하기에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 “C” 중에는 여러 개 중에서 제일 좋아보이는 놈을 선택하게 될 때에는
기분이 좋은 편이나 결과는 꼭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함이 실패로 되는

수가 있다.

잘될 줄 알았던 “C”가 실패로 끝난 경우를 하나 글로 옮기고자 한다.

때는 74 년 4 월 사우디 아라비아로 근무하러 가기 바로 전이다.

월급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 가로 궁리와 고민을 하다가,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에 금리보다 더 커지는 것이 “金”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단히

흡족해 하며 결정을 하고 나니 너무 잘한 방법이라고 자찬을 한 일이 있다.

애 둘하고 생활하고 남는 것은 무조건 “金”을 사기로 하고, 서방 기다리는

게 지루해 질가 봐 일주일에 주택복권을 열장 씩 사는 것 하고를 일년간

내자의 일로 하고 임지로 떠났다.

첫 달에는 한 냥짜리 금 열쇄를 사 놓고, 두 번째 달에는 금은방의 조언으로

괘로 사기 시작을 했다. 내자는 일주일을 주말마다 테레비 앞에서 복권 맟

추어 보는 게 서방 편지 받는 것 만큼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지냈을 것이다.

이 “C”의 선택은 완전히 빗나가게 되었다. 75년에 귀국 휴가차 집에 왔을

때에는 제법 저축 분이 얼추 조그마한 집 하나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 “金”을 처분하게 되는데, 월남이 한참 전쟁하던 때에, 다시 말하여 금

값이 비쌀 때에 “金”을 사기 시작하여, 내가 정작 키워서 난생 처음으로 재산

목록 1호를 마련하려 하니까, 월남 전쟁이 끝이 나서 금 값이 폭락을 하여

안정된 것이다.

어른 밑에서 칠년이나 시집살이 시키고 겨우 오막살이 하나 사려는데, 전혀

도움은 커녕, 그 동안 기대 기대하며 샀었던 주택복권 마저 오백원 자리 이상

걸린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주택복권이라는 “C’는 그런대로 견디는 게 쉬웠으나, “金”이라는 “C”는 그 후
한 이년이나 괘심 하기 짝이 없었다.

이년 후에 그 집을 산 값에 세배 반이나 더 받고 팔았을 때에 겨우 “金”을 잊을

수 있었다.

“C”는 단기적으로 好, 不好를 판단할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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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