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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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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24. 11:42 一石 컬럼
아파트 값 유감

우리나라 아파트의 원조는 주공에서 시작한 마포였으나 75년에 시작한
압구정동의 현대 아파트는 현대 구암 사업소에서 재미를 본 “Sub-division
Project”에서 비롯 된 것이다.

제 삼 한강교가 준공되어서 다리를 건너자 마자 있었던 배 밭이 오리지널
동네였다. (정주영 회장 바로 아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의 사저가
있었던 곳)

76년도에 현대가 짓기 시작하여 분양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서울 사람들은
아파트를 우습게 알던 시절이어서 현대의 사원이면 아무나 산다고 하면 10%
할인을 해 주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아파트를 높게 평가 하던 이들은 평사원의 이름을 빌려서도 여러 채를
산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나 같은 사람은 아파트 현장엘 가보니 시내 뻐스도
안 다니고 자가용을 가져야 생활이 되는 곳이라 웃어 넘겼었다.

(주: 아파트가 안 팔리니까 중개나 소개를 하여서라도 팔리게 하였으면 고과에
반영 하던 시절이었음)

77년 8월에 사우디 리야드 지점장 시절에 그 아파트 값이 분양가에 비해 매우
뛰었다는 소식이 있을 때, 회사는 중동에 근무하던 우수 사원에게는 10%의
할인율로 할당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신청하여 산 일이 있었다.

지금 “김성환”이가 사는 바로 옆 72동 408 호 35 평 형이었다. 년가 중에 서울
와서 현장엘 가보니 “최공탁”이가 건축 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육 개월인가 할부로 납입한 가격이 일천십만 원으로 기억한다. 계약하고
월 불입금을 낼 때마다 서울 소식이 낸 돈의 곱빼기를 주니 팔란다.

그 해 12월에 입주 되는 곳이었기에 입주 할 때를 기대하여서 버티었다. 그리고
귀국 후에 본사 근무하면 이사 가려고 작정을 하고, 집안 어르신에게 결제를
올렸다가 혼줄이 나버리고 말아서 포기하고 입주 시에 팔기로 하였다.

77 년 12 월 24일 크리스 마스 이브에 입주 열쇠를 받아 들고 내자는 어른의
말씀에 따라 복덕방에 매물 하겠다 하여 곱배기의 가격으로 매도하여, 내
생애의 제일 큰 돈을 벌었다고 너무나도 흐뭇한 일이 있었다.

그 사실을 편지로 읽고서 정말로 감동한 게 사실이다. 사우디 삼년 반 근무에
생활비 빼고 모은 돈이 일천 팔백만 원이었는데 약 반 년 사이에 그 큰 돈을
벌었으니까 였다.

78년 9월에 귀국하여 본사 근무를 시작 하였을 때는 내가 판 가격의 네 배가
되어 있었다.

엊 저녁 뉴스로는 한 평도 살 수 없을 만큼 비싼 집이 되어있다. “새옹지마” !



2002년 08월 28일 20시 18분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