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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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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25. 18:46 一石 컬럼

북한 처녀들과의 만남

2002-05-26



북한 처녀들과의 만남

수도 트리폴리에서 벵가지로 가는 공항 안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사십 여 명이 넘는 북한의 여자 동포를 보았는데, 탑승권이 내 것과 동일한 색갈이었다.

어느 해인가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 공항에서 소련항공의 여 승무원들을 만났을 때 보다 약간은 더 긴장되고 흥분되는 기분이었다. 터미널 밖에는 “조선민항”기 한 대가 있었다.

참고로 여러 아랍권의 국내 항공 탑승권은 문맹자를 위하여 색으로 구분된다. 서너 명의 건장한 북한 남자들이 경호를 하고 있었으며, 아주 말 잘 듣는 국민학생 들처럼 매우 조용하였다.

우선 공중전화로 벵가지 지점으로 전화를 하여 도착 시간과 함께 몇 명이서 마중 나와 줄 것을 당부하였고, 곧장 탑승구 맨 앞에 가서 첫 번째로 줄을 섰다. 혹 잘하면 북한 여자와 동석이라도 했으면 하는 기대이어서 였다.

“남남북녀”라고 누가 하였던 가를 실감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얼굴에 크림 정도만 바른 그리고 눈썹 그린이 없는 아주 곱고 어여쁜 처녀 들로 보였고, 워낙 이쁜이의 진정한 모습은 화장 없는 주물러 터뜨린 데 없는 진짜 “북녀’ 들이었고, 이들은 벵가지 외곽의 조그마한 도시의 병원에 근무하게 될 의료진이었다.

탑승시간이 되니까, 건장한 북한 공관원 들이 이들 의료진들을 제일 먼저 리비아 공항 직원과 같이 안내하여 제일 먼저 탑승을 시키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참고로 사회주의 국가의 여객기는 별도로 지정 좌석권을 발행하지 않고 먼저 타는 사람이 먼저 앉는 자리가 임자이고 일등석이라는 제도가 없다.

내가 일류샨 여객기에 올라서 혹이나 기대했던 북한 처녀 혼자 앉은 자리는 없었고, 용하게도 그들로만 맨 앞에서부터 빈틈없이 꽉 찬 것을 보니 옆 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 여 비행 시간에 이야기 하고싶었던 꿈은 없어졌으니, 그들 뒷 자리라도 다행이라 싶어 정좌 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비행시간 내내 철저한 교육 탓인지 벙어리 행세를 하였다. 처다도 안 보았다. 우리 말로 아무리 말을 걸어도 “쇠귀에 경 읽는다”는 속담 그대로였다.

공항에 도착하니까, 역시 북한 남자들 여럿이서 나와서 그들을 안내하더니 그 많던 미녀 아가씨들이 금새 보이질 않아서, 우리 직원에게 찾아보라고 하였다.

공항 터미널 밖에 외진 곳에 짐차 (카고 트럭 2. 3톤 정도)가 두 대가 있었고 그들은 그 짐차 두 대위에 순한 양처럼 탑승하고 있었단다.

해외로 취업 나온 사람들이니 그 들의 여행 가방이 궁금하여 더 지켜보았더니, 웬 조그마한 우리의 라면 박스만한 것들을 북한 남자들이 정리하며 큰 카트로 가지고 나가고 있었는데,

그 박스마다에는 “평양 - 모스코바 - 벵가지로” 라고 쓰여 있었고, 그 밑에는 각자의 이름들이 보였다. 맨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웬 이렇게 많은 문구류를 가지고 들어오는가 하고 짐작하였으나 똑 같은 필체로 똑 같은 여행 경로와 개개인의 이름이 씌어 있는 걸 보고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두어 시간 넘게 기대도 사라졌지만, 긴장 또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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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