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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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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18. 06:46 一石 컬럼

嗚呼哀哉라 50년 知己가 卒하여 別離하였다.

110 일 전에 늘 하던대로 퇴근하여 내자가 해준 맛있는

저녁을 같이하고 "잘먹었다"며 마신 물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넘어가는 탓에 돌발적으로 사태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말았다.

당장에 돌변한 무의식 상태에서 동네 병원으로 가니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 한마디에 분당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직행하였으나

거기에서 사흘만에 병원에서 할 일은 다하였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과 함께 - 기도가 막히는 바람에 이미 뇌세포가 성한

부분이 없다라는 기가 막힌 의사의 진단이었단다.

옛 어른들 같으면 그러한 식물상태에서 객사를 면하기 위하여 집으로

모셔다가 천수를 기다릴 법도 하지만 요즘에는 다른 병원으로 가게는

하여도 본인의 집으로는 못가게 한다하여 용인에 있는 한 병원으로

이송되어 무작정 기다리는 그리고 병원에 치료되지 않는 가료를 위한

막대한 비용을 치루는 무모한 버티기를 105일 -

아무 반응이나 지각이 없는 상태에서 호흡 연장만을 위한 의사들의

염치(?)없는 단순 수명 연장 행위는 온갖 영양제 24시간 투여 +

목 식도에 연결하는 튜브를 꽂아 주사기로 병원에서 만든 밥 넣어

주기 - 다행(?)히도 환자는 튜브로 넣어준 식사를 처음부터 거부하여

넣어 주는대로 토하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뇌사상태에서 호흡만은 열심히 하는 그리고

가끔은 손발이 부어오르다 내리다를 반복 - 보호자와 간호원들이

환자 누어있는 자세를 자주 바꾸어 주는 일 - 그래도 등창이 생기어

사흘만에 영면으로 무의미한 환자 생활을 마감하였다.

어느 한의사가 물도 씹어서 먹으라는 강의 중 한 마디가 떠올랐다.

작년에 곱게 한복으로 치장하고 칠순 잔치를 하면서 자손들이 다

모여 축하해주며 만복을 누리는 즐거움을 모두들 기뻐해주던 그

젊은 할배가 중환자실에서 등창이라는 막판 출현으로 너무도 쉽게

마감을 하였다.

61년에 서울대학에 입학하여 두번째 등록금이 어려워 군에 입대 -

강원도 양구군 방산에서 힘들고 어려운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하였으나

칠남매의 장남으로 웬수같은 등록금이 아니라 현실의 생활고를 먼저

해결해야하는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우선 택하여 줄곧 한 직장에서

48년을 굳세게 지켜온 그는 그렇게 물 한 모금으로 그 길로 쫓겨갔다.

그의 魂魄은 이미 110일 전에 떠났지만 그의 육신은 수원에 있는 연화

원이라는 화장장에서 한 시간 40분만에 유분으로 마감을 하였다. 그리고는

용인에 있는 공원묘지의 한 조그마한 납골 석탑에 모셔졌다.

이승에서 수많은 산넘고 물건너서 편안한 중늙은이 되어 노래 잘부르고

고스톱 잘하던 벗은 이 곳 용담골에 와서 지도 금년에는 직장생활 마감하고

시골에서 살고 싶다던 그와는 이메일 질도 마감하였다.

늘 좋아했던 벗이여, 저승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영면하소서 (.)

시립 화장장이라는 곳은 가격의 기준이 엉망으로 정해져 있었다. 수원

사람들은 화장 요금이 십만 원인데 비하여 외지에서 찾아온 고객(?)

에게는 무려 일백만 원을 부과하고, 수원 출신 국가 유공자는 무료봉사를

하지만 타지에서 온 유공자 손님(?)은 오만 원정이다. 봉화마을에서

생을 자진 마감한 노 아무게가 화장되었다고 동판으로 광고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도 오만 원짜리였을 것으로 생각든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