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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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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22. 07:20 一石 컬럼

故 高繼聖 선생 님을 기리며

2003년 02월 06일 21시 57분

나는 학교 6 년을 다니며 특별히 어느 선생 님과 각별한 관계라면 이상하지만 밀접한 인연을 맺어 본 선생님이 이번에 속세와 別離 하신 高 선생 님이었다. 학교 때 내 체육 성적은 그 냥 턱걸이 80점 정도 그것도 그냥 봐주어서 였다는 감을 가지고 있다. ‘61년 대학교를 떨어저 재수를 해야 할 형편이었는데 집안 형편이 먹고 
사는 문제가 원만하지 못한 때여서, 어느 봄날에 혜화동 1 번지엘 갔다가, 운동장에서 高 선생 님을 만나 뵈었는데, 늘 그러 하셨듯이 인자하시고 편안 하시게 인사를 받아 주시어, 쉽게 “가정교사” 자리를 부탁 드렸었다. 낙제를 면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 삼짜리 녀석이었는데, 학교 간다고 나가서 정릉이나 남산에 가서 몇 녀석들이 점심을 먹고 하는 문제를 가진 애였다. 그래서 高 선생님 덕에 쥐꼬리만 하지만 얼마간의 사정이 덜 걱정스러웠었다. 세월은 흘러 흘러 ’78 년 8 월쯤 하여 高 선생님께서 용케도 내 전화 번호를 아시고 전화를 주셨는데, “야 ! 불고기 사줄게 저녁에 나와라 !” 하셨다. 당시는 故 정주영 영감 옆에서 일하던 때여서, 선생 님께 회사 근처로 와 주실 것을 청하여 만나 뵈었더니, 내용인 즉, 큰 아들이 전기과를 졸업하고 병정갔다 와서 현대에 입사 시험을 보게 되었으니 책임 지라는 말씀이었는데, 내 답은 “현대에는 성적이 꼬망지라도 되어야 면접에서 건질 수 있다고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낙심에 가까운 표정과 일루의 희망 같은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입사 시험은 그룹 차원에서 공채를 실시하는 거였고, 건설이 모 회사였기에 시험 성적을 알 수 있었는데, 정말 꼬망지로 필기 시험에 합격을 한 것이었다. (당시 나는 필수 과목인 영어 시험 출제를 책임지고 있었고, 문제는 다섯 개 대학의 영문과 주임 교수들에게 출제료를 주고 문제를 받아 한 시간에 풀수 있는 양 만큼 짜집기를 하는 일이었는데, 당시 고대의 故 조운제 교수 님께도 의뢰를 하곤 했었다.) 나는 高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고 만나서 실 사정을 말씀 드렸는데, 일단 그룹차원 에서 입사시험은 합격은 면접점수로 확실하게 하겠으나, 모 회사인 건설에는 안 되겠고 계열사에 전기쟁이로 할 수 밖에 없음을 말씀 드린 일이 있었고, 그 후에 인천제철에 입사하여 아직까지 잘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십 수년전 高 선생 님 칠순 잔치에도 찾어 뵈었고, 나 한테 젊은 놈이 돋보기 쓴고 신문 본다고 야단 치곤 하셨는데, 두어 달 전에 선생님께서 뇌에 스트로크를 맞아 누워계신다는 귀동냥을 했었는데…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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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