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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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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19. 10:54 一石 컬럼

우리는 자라 오면서 많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 오고있다. 일반적으로 그 동안의

과정에서 제일 행복했던 점을 꼽으라면 대게는 결혼한 사실이 으뜸일 것으로 짐작

되는데, 결혼하면서 내외간에는 자식을 몇이나 가질 것인가가 큰 희망 거리였다고 본다.

그런데 자식을 갖게 된다는 사실 자체만 가지고도 희망에 벅찬 꿈이었지만 아들 또는

딸을 기대하여서 기대치 만큼 딱 들어 맞는 집은 그리 흔치 않은 것이어 왔기에 八字論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다.

우리 51회에는 딸 셋 가진 친구들이 제법 있는 편이고 딸 부자 집은 넷을 둔 친구도 있으니

현실은 의지와는 별개로 펼쳐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딸들과 사위들이 효를 행하니

지금은 행복하다 강조 하더라도 갓난쟁이 시절에 네 번째 딸이 태어 났을 시점에서는 그

또한 좋다고 박수를 쳤을 가는 본인에게 물어 보아야만 정답이 구해 진다.

왕년에 잘 나가던 가수 전영우 (예명 전 항)를 되돌이켜 본다. 이 친구는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 하면서 지금도 교수하는 엄정행과 동기로 같은 전공이었고 이 둘 이는 같이 ROTC

3기 후보생이었다. 영우는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여 엄 교수 보다는 더 더욱 촉망 받는

학생이었다.

문제는 우연치 않게도 영우의 장난 끼로 발동이 걸렸는데, 라디오 시절 64년 도에 MBC

방송의 노래 자랑에 참가해 본 것이 년말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받게 되는 바람에 “가수

證”을 받고 나서 여기 저기에서 불러 다니기 시작 하다가 진짜 연예계 가수가 되어버린

경우이다.

그냥 차분히 학교 생활하고 사회에 진출하였더라면 엄정행이 보다는 더 잘 나가는 성악

교수로 지낼 수 있었는데 당시에 TBC-TV의 아나운서 하던 마나님하고 지금의 미국

생활보다 편안하게 살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또 다른 경우의 가수 “한상일”의 경우는 서울공대 건축과 출신인데 노래의 끼를 못 이겨

건축 공학도를 접었던 친구였으나, 자기 동기들이 부장 시절에 현대건설에 대리로 입사한

경우가 있다.

마나님과 아이들하고 생활 시간 帶가 맞지 않아서 일대 변혁을 결심하고 代理라는 벼슬이

중요치 않다는 작정으로 자기 본명인 “한재상”을 되 찾아서 열심히 산 경우이다. 이 친구는

본래의 자질을 차츰 인정을 받아 나중에 계열사의 중역까지 하였다.

우리 51회 중에서 山 쟁이로는 故 “이웅일”이가 空岩이 유도로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경탄할 실력을 가졌을 때부터 山을 좋아한 벗이였다. 이 친구가 연대 의대에 들어가서 중도에

의학을 제 팔자에 따라 (?) 포기하고 말았었다.

설악산이라면 이 친구처럼 많이 오르고 자세히 알고 있는 친구는 없었는데 그리고 체격 조건

으로 보아도 이 친구처럼 장수의 체질을 가진 친구도 드물었었는데, 일은 어느 날 한 동네에

사는 아우가 정선 산 자락에 집 한 채를 사 가지고 도배까지 한 상태에서 “집 들이” 초청을

받게 되자 같은 동네에 사는 개인 택시 하는 친구까지 동행을 하게 된다.

때는 지금처럼 초 가을인 것으로 기억이 된다. 집들이에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번개 탄에다

십구공탄까지 넉넉하게 준비하여 가지고 새로 단장된 집에 도착하니 너무 상쾌한 그리고

자랑스러운 장소와 별장(?)에 도취하여 따뜻하게 아궁이에 연탄을 지피고 쐬주를 한 껏

즐기고 다음 날 아침 부지런히 설악산에 오르기로 하고 잠을 자게 된다.

잠을 자고 난지 사흘 만에 산에 오르던 등산객이 물이라도 얻어 먹을 양으로 그 집에 인기척을

하여 보지만 이미 이들은 영면 중이었다. 다행히 주민증이 발견되어 집으로 연락이 닿게 되었는데, 경찰의 전갈인 즉, 산중에서 변사체로 발견 되었기 때문에 검찰에서 부검을 하여 본

후에 자연사로 판명이 되어야 시신이 옮겨 진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사직동 팀장이었던 지금의 함양 군수 덕으로 복잡한 절차 없이 강남 세브란스 영안실로

옮겨져 자기 숙부인 그 곳 의사의 확인을 받고서야 영면의 길로 편안히 가게 되었었다.

웅일아, 연탄 가스 중독이 신문에만 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 네 죄였구나 (!) 고 것 하나만

조심 했어도 요즘 산행 길 사진에서 너를 자주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여러 친구들이 부러워

할 터인데, …

2006년 10월 31일 0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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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