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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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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11. 10:58 一石 컬럼
‘ 四柱 八字 · 五 ’

때는 60 년 4 월 18 일 서울 시내 고교생들이 대학생들의 피 묻은 깃발을

보고 시내로 경무대로 몰켜 가고 있는 젊은이들이 수 없이 많았고, 이들은 모두 다 지 팔자대로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았어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당시 고 3 용케도 불 자동차에 올라탔고 그 차는 경무대 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효자동 못 밑 처에서 차는 정지를 하였고 거기엔 죽은 학생이 여러 명이었으나 그 젊은이는 몸에 총상 다섯 발을 맞은지도 모르고 차에서 뛰어내려 골목을 향하여 질주하였다.

어째건 같은 골목으로 뛰어가던 고대생들이 한참 도망(?)을 가고 있던 중

그 고3생이 피투성이가 된 걸 보고 부축을 하던 중에 당시의 “LIFE” 誌

사진 기자가 요청하여 어느 벽돌 담 앞에서 사진을 찍게 되었고 그 사진은 바로 라이프 지에 실려 사진 기자는 상을 타게 되었고.

그 학생은 병원에 입원을 하여 치료를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을 하는데 총 한 발에 세상을 떠나 수유리 묘역에 누워있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 분은 5.16 후에 고교 출신으로 당시 내각 사무처에서 특채하여 내무부 말단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말단 공무원이 야간 대학을 졸업하면서 열심히 근무하여 경기도의 군수

두 곳을 거쳐 한 도시의 시장까지 진출하다가 선출 직으로 바뀌면서 부시장을 몇 곳 거치고 38년 만에 정년으로 퇴임을 한 사람이 내 가까운 인척 중에 있는데, 매 해 4.19 날에는 그 때 그 인물이라는 제하에 나이 들어 가는 모습이 당시의 고대생과 함께 신문에 실리고 있다.


나는 젊은 시절 명절에 처가에 가는 것을 아주 싫어하였었다. 처가에서는

명절이면 늘 처 백부 댁에서 모이곤 하였는데 사촌 동서 되는 이가 제주

대학 법과를 나와 제주고등학교 수학 선생을 하다가 일본으로 밀항 ?

붙잡혀서 오무라 수용소에서 얼마간 살다가 제주로 되돌아와서는 막판이라는 결심으로

절에 들어가 여섯 달 고등고시 사법시험을 준비하여 직방으로 최종 합격

까지 한 제주 출신으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는데, 내가 사원 시절에

서울 지법의 판사로 있었다.

나는 과장 시절까지는 이 친구가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어른들 앞에서 내가 위축되는 걸 느꼈기에 그것이 싫었기에 안 가려고 핑계를 만들고 싶어하였었다. "서울에서 법 쪼가리 한 사위는 회사 사원이고 제주도에서 공부한

사위는 판사" - 이런 말이 이명 현상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해외생활을 십여 년을 하였기에 한 동안은 조우하는 것이 뜸하다가

어느 해에 내게 한 말이, 괜히 힘든 고시하고 나서의 사회생활이 후회

스럽다 하였는데 이유인 즉, 가정 생활이라는 게 애들하고 놀아 줄 여유가 없고 거의 집에서의 시간을 책상 끼고 앉아서 판결문 쓰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외국에 구경 나갈 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냥반이 우리나라 법조계에서는 윤관 대법원장 시절에 제일 처음으로

정년 (38년 봉직) 퇴직을 한 분이고 지금은 모 로 펌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의 동생 하나는 40대 중반에 약방에서 지어 준 감기약 먹고서 비명

횡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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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