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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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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8. 05:38 一石 컬럼
‘ 柱 八字 · 四 ’


6.25 전쟁으로 早失 父母한 젊은이가 신체 건장하고 깡다구 좋고 쌈박질도 잘하던 그는 종로통의 어깨 조직에 들어가서 학업을 이어가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었는데 당시의 큰 형님 뻘 되는 “임화수”의 눈에 띄어 그 조직에서 해방되고 학비 등의 개인 후원으로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였고,

일찍어니 현대에 들어와서 노력을 한 결과로 플란트 사업 본부장까지 지냈고 마나님은 이대 부속병원에서 방사선과 의사하던 분이었다. 의사하는

마나님은 팔자에 따라(?) 첫 번에 딸 쌍둥이를 낳았으나 한 아가는 영아적에 세상을 등졌었다.

나도 이 양반 따라 해외 입찰에 출장도 여러 번 같이 다닌 일들이 있어서

아주 친하게 지낸 분이었는데,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인근에서 폭파된 KAL 858기 (바그다드 발 바레인 경유 김포 노선)에 탑승하는 바람에

너무나 아까운 生을 동료 직원 셋과 함께 이승을 져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그는 11 월 30일 바그다드를 출발 할 예정이었으나

한시라도 본사에 부지런히 들어가서 일을 하려는 욕심으로 여정을 변경

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죄 없는 사람들이 빨갱이들에 의한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 115명이라는 많은 이들이 단 한 방에 운명을 같이 했다는 것도
八字論에 해당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본래의 예정대로 했으면 무탈할 것을
회장의 氣質을 벼슬이 커질수록 닮아간 것도 팔자일 가는 정답을 모르겠다.

내가 계동에서 일하고 있었으면 그와 같이 동행을 하였을 가능성은 거의

완벽하였었을 것이나, 길 永에 이을 承이라는 이름 값을 하지 않었는

가도 싶다.

미국 기업의 중요 간부들은 절대로 같은 비행기로 출장을 같은 목적의 업무 라도 다들 흩어져 비행 일정을 달리하여 목적지에서 합류하는 것이 관행

으로 되어 있으나 7/80년대의 한국 기업에서는 아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 는데 요즘에는 기업들이 커졌으니 조금 달라졌는 지는 모르겠다.

故 정주영 회장의 맏 아들 故 夢必 씨가 우여곡절 끝에 거의 마지막 기회로 알고 인천 제철 사장으로 일하고 있을 즈음에 노태우 육군 대장이 막 전역

하여 있을 때인데, 회장은 노 장군을 매일 아침 일찍이 구 서울 고교 교정의 정구장에서 운동을 내무장관 가기 전까지함께 하였었다.

영감님이 맏 아들의 앞을 위하여 그 정구장 운동에 참석 시키는 엄명을 내려서 몽필씨는 꼬박 꼬박 열심히 부친과 노 장군에게 아침마다 눈 도장을 찍었었다.

82년 사월 사고 하루 전날에 몽필 사장은 회사 손님을 부산에서 접대하고 나서 서울 고교 정구장에 시간 맞추어 운동을 하기 위하여 오 밤중에 부산을 출발하여 상경하던 중에 대형 트레일러의 옆구리를 들이 받아서 운전 기사와 같이 참사를 당하였다. 묘한 것이 그 트레일러는 정거 중이었고 또 인천 제철의 차량이었던 것이다.

해석이야 읽는 사람 마음대로 하면 되지만 47세의 나이인데 아버지 엄명에 하루 빠져야 하겠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생전에 아니하던 걸 버릇으로 만들려 다가 생겼던 일이었다고 그려진다.

지금 고려화학 정상영 회장과는 동갑 네로 자랐기에 밖에서는 어려서 같이 놀 때엔 서로 이놈 저놈 싸우다가도 집안에서는 깎듯이 막내 삼촌으로 대접 하였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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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