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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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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2 바람 난 ''박사모''1
  2. 2007.02.22 또 김대업 類에게 농락 당해 좌절할 것인가
  3. 2007.02.22 2 월 22 일 (목)
  4. 2007.02.22 철들자 망령인가 ? (김동길)
2007. 2. 22. 21:11 신문 칼럼 + 시사

바람난 박사모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둘러싼 검증 공방이 진실 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는 총동원령까지 내렸다.[2007-02-20 10:43:13]

posted by 조 쿠먼
2007. 2. 22. 15:53 신문 칼럼 + 시사

또 김대업 류에게 농락당해 좌절할 것인가!

네거티브의 신성(新星) 김유찬의 하류인생과 나라의 절망
2007-02-22 15:24:59

박근혜 발(發) 김대업 군상(群像) 또는 그 아류(亞流)들인 유승민. 정인봉들이 준비해온 ‘이명박 죽이기’ 음모의 하이라이트가 그들과 치밀하게 연계된 듯한 네거티브 신성(新星) 김유찬의 출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김유찬의 본질과 네거티브의 허구성, 배후성 입증 등을 중심으로 연재하고자 한다.)

-과거 행적을 통해 본 김유찬의 위선과 가식의 본질-

김유찬은 1991년 8월부터 10월까지 현대에 근무한 적이 있다. 이때 당시 이명박 회장과 그는 대면한 적이 없는 사이였다. 1995년 6월 그는 이명박 당시 신한국당 의원에게 “「신화의 인물」인 이 의원의 참모로 정치를 배우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후 국회의원 6급 비서로 채용된다.

김유찬은 이명박 의원이 1996년 4.11일 정치 1번지 종로에서 4선의 관록을 자랑하던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에게 완승하자.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5급 비서관직을 요구하다 거절당한다. 국회의원은 비서관을 발탁할 때 국정을 위해 능력과 품성에 맞는 인물을 골라야 한다. 이는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는 이에 불만을 품고 술자리에서 동료들에게 이 의원에 대한 험담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에 대해 자리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지금 말하고 있으나 당시 언론은 김유찬에 대해 보도하며 이를 입증했다.(1996년 9.19일 조선 참조)

김유찬은 또 선거마무리 과정에서 쓴 접대비와 활동비 결제를 빌미로 이명박 의원에게 거금 1,000만 원을 요구한다. 96년 환산 1,000만 원은 대단히 큰돈이다. 선거운동에서 정상적인 의식을 가진 후보의 참모라면 상식적으로 그렇게 큰돈을 사용하지 못한다. 이 의원 측도 개인이 다량의 외상 술값을 지는 등 사적인 용도로 쓴바,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의 품성이 어떠한가를 이 두 대목은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김유찬은 이와 같은 개인적 감정에 의거 1996년 9월9일 밤 10시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를 찾아간다. 그는 이종찬에게 “김 동지! 정말 어려운 결정을 했소”라는 격려를 받고 내친김에 일산의 DJ에게 가자고 그에게 요구한다. 이때 DJ는 87년의 대선후보 불출마 선언 뒤 이듬해 대선 출마, 1992년 12.19일의 정계은퇴 선언 후 정치에 컴백하면서 국민의 따가운 시선 속에 노심초사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던 시기였다. DJ는 낭보를 듣고 온 김유찬에게 그의 말처럼 최고의 찬사를 다 보낸다. 이는 김유찬과 당시 국민회의 및 이종찬과의 3억 원 거래에 대한 판결문 내용을 뒷받침하는 정황적 근거이다. 이때 국민회의는 서울에서 참패를 당했었다.

김유찬은 1996. 9. 10일 국민회의 당사에서 양심선언 운운하며, 이명박 의원의 선거비용 초과 지출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는다. 그는 이때 자신이 92년 이 의원이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하자 바로 따라 들어가 잇단 중책을 맡았다고 허위사실을 나열한다. 그가 이명박 의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 6월이었다. 근무하지도 않았던 3년간의 세월을 부풀려 자신의 주가를 높이고자 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상기 내용은 당시 언론기사를 참조한 것임)

-김유찬은 이명박 의원 측에 먼저 도피 및 자금 요구를 먼저 했다.
당시 이 의원에 대한 범인 도피죄도 다시 조명해야 하지 않은가?-

1996년 10.3일자 주간조선은 김유찬이 9.10일 국민회의 당사에서 기자회견 한 이후 9.16일 돌연 출국하기 전까지의 심경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이 잡지는 김유찬이 기자회견 이틀째 날인 9.12일“「욱」하는 심정으로 일을 저질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며 그의 불안한 심경을 전했다. 또한 “국민회의에서 돈은 좀 안주던가.” 는 기자의 질문에 “ 돈은 무슨 돈. 국민회의도 결국 나를 이용하고 버리는 것 아니냐. 이용하려면 이용하라고 해. 나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의 이명박 의원에 대한 선거관련 폭로가 돈에 있었음을 암시했다.

김유찬과 막역한 것으로 알려진 취재기자는 그가 괴로움을 토로하며, “사후 보장만 해주면 이쯤에서 먼 나라에 가서 숨어 살고 싶다. 큰돈이 필요할 것”이다 라며 이명박 의원 측과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 김유찬이 자신의 폭로내용과 사실이 다르다는 편지를 이명박 의원에게 자진해 쓰겠다는 말도 했음을 전언했다.

김유찬은 이후 캐나다로 9. 16일 전격적으로 출국한 후, 이명박 의원의 선거법 공소시효 기간인 10. 11일 이전인 10.6일에 교묘하게 타이밍을 맞추고 귀국한다. (이는 새로운 거래를 위한 그의 고도의 책략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라! 배신을 밥 먹듯 하는 그에게 당시 이명박 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끝낼 수 있는 위증교사비 명목의 거금을 주었겠는가? 누가 봐도 상식이 아닌가?

김유찬은 귀국한 후, 위의 동 잡지와 다시 인터뷰를 하고 자신이 먼저 9.14일 자신을 감시 중이던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 측의 감시를 벗어나 이명박 의원 진영과 먼저 접촉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의원 진영의 L, K. 또 다른 K를 만나 “조용히 사라져 주겠다”며 도피자금을 먼저 요구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김유찬은 도피자금으로 1만 8천 달러(당시 한화 약 1천6백만 원) 이상은 받지 않았음도 시인했다.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이때 김유찬이가 위 세 명의 이명박 의원 측 인사들에게 먼저 자신의 도피와 함께 자금을 제안했던바, 이들이 정황상 그의 입맛에 맞는 말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개연성이다. 김유찬은 이들이 사후보장을 언급했다며, 나중 자금지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자의적으로 이명박 의원 연계설을 해석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유승민. 정인봉. 김유찬으로 이어지는 조직적 네거티브 프로세스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10여 년 전 당시 이명박 의원과 김유찬 전 비서에 대한 연구를 깊게 했다. 이 과정에서 김유찬이가 당시에 벌인 배신. 그리고 자진투항과 거짓폭로, 이후 재배신 등의 모든 추잡한 행위의 귀결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돈과 권력을 위해서는 자신의 양심은 언제든지 팔 수 있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한 인간에 대한 발견이었다.

나는 법에 대해 잘 모른다. 이명박 전 시장이 의도했든 아니든 그는 범인도피죄까지 포함해 법의 심판을 이미 달게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의 범인도피죄의 유발자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적을 보인 ‘비열한 거리’의 사나이 김유찬이라면 그 사안에 대해서도 재조명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김유찬의 2.21일 ‘이명박 죽이기’ 폭로의 허구성 입증-

김유찬은 지난번 1차 기자회견에서 제기했던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관련 의혹에 대해 그 어느 하나도 명확한 해답을 내어놓지 못했다. 언론이 그에 대해 새로운 김대업으로 추정하는 몇 가지 논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 문제제기 1-김유찬이 1차 기자회견 및 언론인터뷰와 2차 기자회견의 차이점

김유찬은 2.16일 1차 기자회견에서 2년간 공판 때마다 이명박 전 시장 측에서 “한 번에 200만 원, 150만 원, 기분 내키면 300만 원도 줬다.”라고 폭로했다. 그러나 21일의 2차 회견에서는 96년 11월 위증대가로 5,500만 원, 97년 1월 1,000만 원, 98년 5월 2,000만 원을 다발로 받았다고 번복했다. 또한, 1차 때는 총액이 1억 2천오백만 원 이었으나 2차 때는 1억 2천오십만 원으로 줄었다.

김유찬은 20일 모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에게 돈을 건넨 사람의 자필 확인서를 공개하겠다고 밝혔으나, 2차 회견 때 이를 공개하지 못했다.

 문제제기 2-녹취록 내용과 등장하는 J와 K 믿을 만 한가?

김유찬은 녹취록에 등장하는 J가 자신의 IBC 직원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J는 물론이고, k 역시 한때 같은 회사의 전직 고위 직원이었음을 고백했다. 이는 녹취록 내용도 김유찬의 일방적 유도질문과 이를 방어하는 이들의 모습만 나타났다. 녹취도 2차 기자회견 하루 전날 밤 급조된 것으로 그가 1차 폭로 이후 이들을 줄기차게 설득했을 개연성과 그와의 회사로 엮어진 관계성에 비춰 볼 때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추론된다.

 문제제기 3-위증교사 및 대가지급의 허구성

김유찬은 96년 11월 양재동 환승 주차장에서 이광철 전 이명박 의원 비서관으로부터 5.500만 원, 97년 서초동 카페에서 1,000만 원을 받았다고 위증 대가가 지적한 금품 수수 내역서에 기재하고 있으나, 그는 이 사건과 관련 96년 9.22일 수감되어 97년 3월 14일 출소 하였다. 이는 김유찬의 주장이 공작에 의한 것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이다.

 문제제기 4-김유찬이 주장하는 상암 DMC 내에 IBC 건립 입찰 건의 허구성

김유찬은 자신이 서울시를 상대로 추진한 상암 DMC 내에 IBC 건립 입찰이 이명박 전 시장의 집요한 방해에 의해 무산되었다고 주장하며, 그에 대해 적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이 또한 허구이다. 즉 김유찬의 회사는 입찰 보증금조차 내지 못한 자격 미달의 회사였다. 또 당시 김유찬의 <나이 아메리카 컨소시엄>을 포함해 KS종합건설, 랜드마크 컨소시엄 등 입찰에 참여한 모든 회사가 유찰된바, 김유찬의 회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자 서울시 측(이명박 전시장)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이 전 시장을 공사를 구분 못 하는 인물로 몰기 위한 완전히 날조된 거짓말에 불과하다.

 문제제기 5-김유찬의 96년 선거법 폭로 동기인 이종찬 측 3억 대가설 진위

김유찬은 위에서 당시 이종찬 측에서 3억 원을 요구. 담합하고 이명박 의원의 선거법 위반을 폭로한 정황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양심선언인 것처럼 전과 7범 김대업이 자칭 의인 행세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이는 언론의 추적과 검찰의 수사로 분명히 확인되었고, 그가 막역한 친구로 지내던 상기의 주간조선 기자와 인터뷰한 녹취내용에서도 확실한 그 징후를 볼 수 있다.

 문제제기 6-김유찬이 96년 이재창 의원의 보좌관이 되었으나, 이후 이명박 의원 때문에 해고되었다고 주장하나, 이 또한 허위로 판명되었다.

모 일간지는 1996년 9.29일 자 기사는 김유찬의 친구 말을 인용하며 이를 확인했다. 즉 그는 “유찬이가 국민회의 이재창 의원실을 노크했으나, 거절당했다는데 이 의원이 L모 의원에게 부정적인 평을 했기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눈치였다”고 전언했다. 이재창 의원 측도 그가 정식 보좌관에 채용된 적이 없음을 확인했다.

 문제제기 7 김유찬이 이 전 시장이 삼자화법으로 살해했다는 내용의 타당성

김유찬은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캠프를 기웃거리며, 책을 미끼로 한 압박 행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한 권의 책을 가지고 대선에 맞춰 끌어온다는 것도 수상하다. 2002년에 입수된 그의 책에는 이 의원에게 자신이 사과하자, 그가 사람은 신뢰감을 가져야 한다”며 훈계조로 김유찬이 말한 내용을 말했다고 적혀있다. 이는 당시 김유찬에게 분노한 청년당원들이 그를 죽이고 싶다는 적개심을 이명박 의원이 만류한 것으로 묘사될 뿐인데, 이를 삼자협박에 의한 살해라 하는 것은 그의 놀라운 공작적 사고를 단면으로 보여 준다 하겠다.

 문제제기 8-김유찬은 이 전 시장의 모든 사생활을 망라한 듯한 이명박 리포터를 2월 말경 발간한다고 했는데 타당한가?

김유찬은 당시 이명박 의원과 1년 남짓 고작 6급 비서로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그의 전 사생활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한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자, 전형적인 특정세력의 사주에 의해 정밀하게 기획된 공작의 냄새를 느끼게 하는 대목으로 간주된다.

 문제제기 9-김유찬은 이 전 시장의 정주영 배신 건과 화해 메신저로 정씨 성을 가진 정무 부시장을 사적인 논리에 의해 발탁했다는 김유찬의 발언 진위성

이명박 전 시장은 그의 ‘신화는 없다.’에서 정주영 회장과 결별한 직접적 요인이 그가 현대의 오너로 있으면서, 1992년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밝히며, 일방적으로 자신의 동참을 요구한 데서 찾고 있다. 즉 그는 정치는 분명한 철학과 지향점이 있어야 하는데 정 회장은 이를 결하고 있으며, 권력과 금력을 동시에 쥐고자 하는 무모한 판단을 하고 있다고 판단. 이를 단호히 거절한 것이다. 냉철한 판단 아닌가?

정두언 의원은 김유찬이 이명박 전 시장이 정씨 일가와 화해 메신저로 활용하고자 발탁했다는 이가 하동 정씨인 자신일 것이라며, 본인은 정주영 일가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펄떡 뛰고 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김유찬의 공작이다. 대명천지에 금방 탄로날 이와 같은 거짓말도 유수의 언론을 다 모아 놓고 얼굴 하나 안 변하고 떠드는데 그가 하는 어떤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 김대업 류인 공작전문가에 속아 통한의 세월을 보낼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과 판단이 아닌가?-

대한민국은 지금 절망이냐 희망으로의 도약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이런 막중한 국가위기 상황에서 다음 국가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에 대한 냉혹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검증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전과 7범 김대업의 요술에 속아
지금 통한의 세월을 사는 것에서 보듯 그와 살의 궤적이 비슷한 네거티브 신성(新星) 김유찬이 같은 인물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 김대업도 정의를 밝히겠다며 세상을 호령했다. 또한, 권력을 쥔 그 배후 세력들과 노사모 등 그 추종자들이 ‘시대의 영웅이자 의인’이라 김대업을 칭하며 얼마나 요사를 떨었는가? 세월은 흘러 지금 김대업과 동급인 김유찬이 “정직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며 구국(救國)의 예언자처럼 짠하고 혜성처럼 나타났다. 단 그 뒤의 탄탄한 배후가 이제 상대진영이 아닌 같은 진영이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유승민. 정인봉 등이 그의 무대를 만들어 주고자 얼마나 눈물 나는 헌신을 하였으며, 박사모는 또한 유신시대 군대 동원을 위한 계엄선포를 방불케 하는 무시무시한 총동원령을 내리며, 그들의 구세주를 뒷받침하지 않았던가?

김유찬에 대한 전폭적 지원은 이제 망할 집안인 여당에서도 그를 메시아로 대망할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유찬! 그가 무엇을 위하여 ‘이명박 죽이기’ 네거티브의 종을 울리고 있는가? 자명하지 않은가? 언제까지 대선 때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김대업. 김유찬 등 조폭보다 못한 인생들에 의해 국민이 휘둘리고, 우리 대한민국이 절망의 바다로 던져져야 하는가!

지금은 도탄에 빠진 민생. 추락이냐 소생(蘇生)‧이냐 하는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민적 여망인 정권교체의 꿈이 어디에서 좌초될 것인가! 하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국민의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이것이 2007년 판 김대업인 김유찬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냉혹한 교훈일 것이다.

성 준 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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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
2007. 2. 22. 15:48 신문 칼럼 + 시사
posted by 조 쿠먼
2007. 2. 22. 12:01 신문 칼럼 + 시사

철들자 망령인가

두 후보가 다 사퇴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있을 17대 대통령 선거를 통하여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한국인 들이 많다. 압도적 다수이다. 절대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있어야 맡길 것 아닌가. 당이 있어야 맡길 것 아닌가. 제1야당이 되어 집권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당 내부에서 무마하고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왜 밖으로 삐져나와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를 하기도 전에 유권자인 우리들의 마음을 이렇게 어지럽게 만드는가. 괴롭게 만드는가.

예전에 이명박 씨가 국회의원 시절에 비서관을 지냈다는 자가 뛰어나와 이 씨의 “위증교사” 폭로 회견을 하였으니 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다가 박근혜 씨의 법률 특보라는 자는 막후에서 한나라당의 분열 공작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서로가 준비했던 상대방의 비행을 세상에 폭로한다면 두 후보가 다 사퇴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씨 측이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박 씨의 비행을 낱낱이 들추어낼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열린우리당의 탈당파들이 우선 만세를 부를 것이고 아직도 떠나지 않고 열린우리당에 남아있는 국회의원들이 뒤이어 만세를 부를 것이고 나라를 이 꼴을 만들어놓고 임기가 만료되어 떠날 수밖에 없는 노무현이 또한 만세를 부를 것이다.

한나라당이 제3의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울밑에 선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http://www.kimdonggill.com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