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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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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2. 16:27 一石 컬럼

지난 주말에 꼴을 대충 갖추게 되었읍니다. (2010 년 9 월 10 일)

그 말썽 사나운 생활 하수는 집수정을 만들어

입구에 파 놓은 연못으로 연결 되었고, 연못에는

수초와 갈대를 심었으나 올 겨울을 잘 지낼지는

내년 봄이 되어야 되겠고, 내년 봄에는 연꽃도

심을 예정입니다.



사창리에 아는 지인이 물고기도 잡아다 준다하여

고대하고 있읍니다. 농토 250 평에는 마사토를

30 전 높이로 덮어 씌워 놓아서 조그마하게

농사를 시작하면 제법시청각 교육이 시작

됩니다.

어제는 사내면 농협 공판장에서 퇴비 비료 100kg

와 약간 늦었지만 무우, 알타리 무우, 상추, 쑥갓,

갓을 사다 놓고 (이상하게 종자 씨앗은 모두 중국산으로

우리나라에서 OEM으로 들여 온다 함)

오늘 아침에 약 3 미터 가량의 골을 열개 씩이나

만들어 놓고 비료 뿌리고 무우 3 고랑, 알타리 무우

4 고랑. 상치 한 고랑. 갓 한 고랑, 쑥갓 한고랑

심으며 모처럼 농사 일의 땀을 흘려 보았읍니다.

복돌이와 복실이가 즈네들 큰 집을 거부하기에

제일 큰 기성 개 집을 사다 놓으니 복실이는 제법

지 집인양 들락거리는데 복돌이는 매를 들어야

쫒겨 들어가는 지경입니다.

집 입구에 포장 진입로가 끝나는 오른 쪽에 1.5 미터에

폭 50 전 짜리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이는 배수 고랑을

만들고 남은 두 개의 씨멘트 관을 그냥 세워 놓은 엉터리

표지에 불과합니다.

시골에서는 우체부가 집 앞마당까지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와서 편지를 전해 주고, 택배 차도 그냥 쑤욱들어

오는게 아직은 그리 편하지 않은 마음입니다.

그 기둥을 세워 놓고 보니까 씨멘트 기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스프레이 페인트로 위는 아이보리 아래에는

밤색을 개칠 하듯이 해놓고 보니 그냥 없는 것 보다는

모냥이 괜찮아 보입니다.

posted by 조 쿠먼
2011. 8. 24. 06:41 一石 컬럼

용담골에는 삽살개 福乭이와 福順이가 같은 식구로 잘 자라고

있읍니다. 복돌이는 작년에 집을 짓고 있는 중에 태어나서

3달이 조금 넘어 광릉골에서 5대가 같이 살던 대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용담골에 터를 잡았고, 복순이는 45일의 어린 나이에

족보있는 3대가 살던 남양주에서 이사왔읍니다.

두 마리 모두가 용담골에 온 것이 福이라는 생각에 복자 돌림으로

명명하였읍니다. 하기는 대가족 살림에서 벗어나 어려서부터 단짝으로

둘이서 오순도순 살고있으니 福字는 옳은 돌림자입니다.

복순이가 용담골에 와서 이름을 지어주는 날부터 신통한 것은 지
이름을 알아듣고는 꼬리를 흔드는 것이었고 다른 애들 이름에는
반응이 없고 이는 다른 애들도 같은 반응을 보여주었읍니다.

지난 겨울에 추위가 영하 24도까지 내려간 날씨에도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은 너무도 고마운 애들이었읍니다. 추위를 덜 타라고

저녁에 남아도는 헌 퍼대기를 잘라서 집에 넣어주면 잘자고 일어

나서는 장난감이 없어서인지 밖으로 퍼대기를 꺼내어서 찢어대는

나쁜 습성이 있었읍니다.

야단을 쳐도 듣는 척만 하지 밤에는 잘 깔고 자다가도 아침이 되면

다시 찢어버리는 병(?)이 있는 것 같았읍니다.

복돌이는 6개월이 넘어서서야 숫놈이라고 뒷 다리 하나를 들고 온 집안

곳곳에 조금씩 아껴가며 영역 표시를 시작하였으나 복순이는 영역 표시에는

관심이 없는듯한 군데에 가진 것 전부를 쉬해버리고 있읍니다.

복순이가 어느 정도 자라니까 몸은 반도 안되는 복실이와 서열 싸움질을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아주 심하게 쌈박질을 하는 바람에 복실이는
따로 조그만 집을 구하여 살게 하였으나 욘석이 그 추운 겨울에 혼자서
지내는 걸 보면 안쓰러워 미안한 마음이 들고하였읍니다. 봄이 되어 새로이
용담골에 와서 집 짓고 있는 새 이웃에게 복실이는 보내어졌읍니다.

가끔 복실이 있는 곳에 가면 욘석이 반갑다고 꼬리를 마구 흔들어대다가는

발랑 누어서 오줌까지 싸가며 반가운 몸짓을 하는 걸 보면 짐승이라도

착하고도 기억력 좋은 점에 고마워하곤 합니다.

어려서는 얘들의 머리 터럭이 눈을 가리지 않았으나 점점 어른이 되면서는

눈을 완전히 가리고 불편하지도 않은듯 잘 견디며 제 역할을 아주 잘하고

있읍니다.

늘 애기 같던 복돌이와 복순이는 둘다 돌이 넘어서 이제는 으젓한 집안 식구

노릇을 곧잘 합니다. 우편배달부는 이제 낯익은 분이라서 짖는 소리가 주인에게

편지 왔다는 식으로 소리 몇 번 짓고는 맙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 오면 갈

때까지 보이면 짓어댑니다.

머리의 터럭이 눈 가리는 걸 잘 보이게 해주려고 이마에 고무줄로 상투를 만들어

주면 곧바로 앞발로 떼어버리곤 합니다. 두 놈이 같은 현상을 보입니다. 잘 안보여도

지들 식대로 살아가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짓는 소리도 이제는 오줌누겠다는 소리도 구분이 갑니다. 그럴 때에는 꼭 혼자만

짖어댑니다. 멀리서 낯선 차가 오는 소리를 들으면 둘이서 같이 우렁차게 짖어

댑니다. 먼저 이상을 발견하고 짖을 때에는 즈네들끼리 의사소통이 잘되는듯

다른 한 녀석도 같이 짖어댑니다.

강아지들이 운동량이 부족하면 땅을 파는 습성이 있다는데 복돌이는 몇 번에 걸친

야단을 맞고는 땅을 파지않고 있으나 복순이는 머리가 나뻐서인지 계속 밤 시간대에

땅을 파는 버릇을 고치지 않고있읍니다.

아침에 복순이가 집에 땅을 파놓은 경우에 주인을 보면 제 집으로 들어가서 눈치만

봅니다. 야단은 맞고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나쁜 짓 해놓은 걸 알고는 있지만 지가

하고싶은 건 하고야 말겠다는 고집쟁이입니다.

두 녀석이 돌이 넘어 자랐으니 이제는 이세를 위한 합사를 시키려합니다.

posted by 조 쿠먼
2011. 8. 18. 06:46 一石 컬럼

嗚呼哀哉라 50년 知己가 卒하여 別離하였다.

110 일 전에 늘 하던대로 퇴근하여 내자가 해준 맛있는

저녁을 같이하고 "잘먹었다"며 마신 물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넘어가는 탓에 돌발적으로 사태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말았다.

당장에 돌변한 무의식 상태에서 동네 병원으로 가니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 한마디에 분당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직행하였으나

거기에서 사흘만에 병원에서 할 일은 다하였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과 함께 - 기도가 막히는 바람에 이미 뇌세포가 성한

부분이 없다라는 기가 막힌 의사의 진단이었단다.

옛 어른들 같으면 그러한 식물상태에서 객사를 면하기 위하여 집으로

모셔다가 천수를 기다릴 법도 하지만 요즘에는 다른 병원으로 가게는

하여도 본인의 집으로는 못가게 한다하여 용인에 있는 한 병원으로

이송되어 무작정 기다리는 그리고 병원에 치료되지 않는 가료를 위한

막대한 비용을 치루는 무모한 버티기를 105일 -

아무 반응이나 지각이 없는 상태에서 호흡 연장만을 위한 의사들의

염치(?)없는 단순 수명 연장 행위는 온갖 영양제 24시간 투여 +

목 식도에 연결하는 튜브를 꽂아 주사기로 병원에서 만든 밥 넣어

주기 - 다행(?)히도 환자는 튜브로 넣어준 식사를 처음부터 거부하여

넣어 주는대로 토하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뇌사상태에서 호흡만은 열심히 하는 그리고

가끔은 손발이 부어오르다 내리다를 반복 - 보호자와 간호원들이

환자 누어있는 자세를 자주 바꾸어 주는 일 - 그래도 등창이 생기어

사흘만에 영면으로 무의미한 환자 생활을 마감하였다.

어느 한의사가 물도 씹어서 먹으라는 강의 중 한 마디가 떠올랐다.

작년에 곱게 한복으로 치장하고 칠순 잔치를 하면서 자손들이 다

모여 축하해주며 만복을 누리는 즐거움을 모두들 기뻐해주던 그

젊은 할배가 중환자실에서 등창이라는 막판 출현으로 너무도 쉽게

마감을 하였다.

61년에 서울대학에 입학하여 두번째 등록금이 어려워 군에 입대 -

강원도 양구군 방산에서 힘들고 어려운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하였으나

칠남매의 장남으로 웬수같은 등록금이 아니라 현실의 생활고를 먼저

해결해야하는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우선 택하여 줄곧 한 직장에서

48년을 굳세게 지켜온 그는 그렇게 물 한 모금으로 그 길로 쫓겨갔다.

그의 魂魄은 이미 110일 전에 떠났지만 그의 육신은 수원에 있는 연화

원이라는 화장장에서 한 시간 40분만에 유분으로 마감을 하였다. 그리고는

용인에 있는 공원묘지의 한 조그마한 납골 석탑에 모셔졌다.

이승에서 수많은 산넘고 물건너서 편안한 중늙은이 되어 노래 잘부르고

고스톱 잘하던 벗은 이 곳 용담골에 와서 지도 금년에는 직장생활 마감하고

시골에서 살고 싶다던 그와는 이메일 질도 마감하였다.

늘 좋아했던 벗이여, 저승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영면하소서 (.)

시립 화장장이라는 곳은 가격의 기준이 엉망으로 정해져 있었다. 수원

사람들은 화장 요금이 십만 원인데 비하여 외지에서 찾아온 고객(?)

에게는 무려 일백만 원을 부과하고, 수원 출신 국가 유공자는 무료봉사를

하지만 타지에서 온 유공자 손님(?)은 오만 원정이다. 봉화마을에서

생을 자진 마감한 노 아무게가 화장되었다고 동판으로 광고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도 오만 원짜리였을 것으로 생각든다.

posted by 조 쿠먼
2011. 7. 11. 11:04 一石 컬럼

농사 흉내내기 시작한 첫 해인데 시골 살림에서는 괜찮은 부산물의

소득이 있는 편이다.

원래 야생으로 자라왔던 뽕 나무가 두 그루가 있는데 얘네들이 오디를

주어가라고 절로 익어서 떨어진다. 떨어지는 애들을 기다리기 보다는

나무 아래에 돋자리를 펴놓고 긴 막대기로 가지들을 흔들어대면 우수수

떨어지게 마련이나 곤 석들이 옷에 떨어지면 꼭 색갈로 표시를 해준다.

얘네들을 정성스레 골라서 참이슬 패트 병에 넣어주고 기다리기만하면

천연 오디 술이되어 저녁 반주에는 아주 쓸만한 맛과 氣를 얻어먹는다.

복분자와 보리수 열매로도 담가 놓았지만 양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는

모르니까 패트 병에 삼분의 일을 채워주었는데 하루 자고 나니까 벌써

색깔이 먹음직스러워 시음을 해보니 색으로는 완벽해도 숙성이 안된

상태에서는 기다리는 게 상책일듯 싶다.

밭에 꽃 피우는 작물들이 제법 있다보니까 여러 종류의 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고추에 모여드는 벌이 다르고 호박에 꼬이는 벌들이 따로있고

화단에 모이는 벌들도 다양하다.

호박 벌은 몸집도 크거니와 생김새 또한 겁을 주는 모양인데 하루는 욘석이

본체 중앙의 파고라 밑에서 꾸물 거리더니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 사흘 쯤

지나니까 3/4십 마리가 기거할 수 있는 집을 지으며 계속 크기를 늘려가고

있었다.

한 마리가 집 짓는 실력은 대단한 끈기와 기술을 겸비하고 있으며 밤에는

집에 매달려서 잠까지 자고 있으니까 걔 집을 없애버릴려니 수시로 곤석이

밖에가서 집짓는 자재를 물고 오는 때를 기다려도 잘 눈에 띄지 않기에

벌과 사람의 끈기 대결이라도 하는 싸움이 되었다.

용케도 곤석이 나가있는 때를 발견하여 무허가 건축물을 감쪽같이 치워

버리고 안심을 하였지만 바로 그 정위치에서 다시 재건축을 시작하는데

이제는 집 짓는 속도가 초 스피드 공정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철거와 재건축의 싸움이 다섯 번째에 이르러서는 곤석이 집을 비운

새에 헐어내고는 파리약을 아주 많이 뿌려놓았더니 걔는 포기하고 다른

곳에 내가 모르는 곳으로 이동하여 안보이니 개한테는 미안하지만 내 마음은

편해 졌다.

다음 번에는 호박 벌보다 더 무섭게 생긴 길쭉한 말벌이 다른 위치를 골라서

무허가 집을 짓기 시작 - 얘네 집은 익혀둔 철거 기술로 단번에 해결하였다.

감자를 심은 게 사월 중순 - 더디게 더디게 조바심을 비웃는듯이 꾸물럭거리던

애들이 드디어 땅 밖으로 나오니 대견스럽고 촌자를 흐뭇하게 하여주는 고마운

보람이다. 어디가나 부런한 애들은 큼직하게 잘자라고 잘 생겼지만 게으른

녀석들은 아직도 꼬맹이들인 채 밖으로 나와서 나도 감자요라고 외치고 있다.

posted by 조 쿠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