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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쿠먼
좋은 것만 찾아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 생활을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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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石 컬럼'에 해당되는 글 49

  1. 2010.11.27 용담골 餘摘 - 31
  2. 2010.11.02 용담골 餘摘 - 2
  3. 2010.10.26 용담골 餘滴 - 1
  4. 2010.04.20 일석헌 2 호 시작하는 이야기
2010. 11. 27. 12:04 一石 컬럼

올해 첫 瑞雪이 나리고 있읍니다.

강아지 세 식구는 처음 보는 것이 뭔 먹이감이라고

열심히 먹어보지만 맛은 없고 차기만 합니다. 펄펄

내리는 눈을 맞아가며 한동안 먹다가 알았다는듯이

멈추고 말았읍니다.

야생 새들이 생각보다는 영리한듯 합니다. 눈이 많이

쌓이면 먹이감 구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걸 아는듯이

아주 많은 식구들이 떼지어 벼 베어낸 논에 모여들어

먹기 시합이라도 하는듯 합니다.

병정 일등병 시절에 독수리 훈련에 참가하여 낙동강 철교를

지키던 때에 끼니 시간이 되면 시골 동네의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 모락 나오는 것이 모여 얕은 안개나 구름처럼 보이던

시골 전경이 이곳 용담골에서도 보이곤 합니다.

고냉지대 중에서도 해발 500 - 700 미터의 지대가 가장 살기가

좋다고들합니다. 용담골의 우리집은 딱 500 미터 지대입니다.

고냉지대를 어제 실감하였읍니다. 아침 여셧 시경에 이곳 온도는

영하 12도 - 아주 시원하기는 밖에서 일분여 정도입니다. 집안의

온도는 안방이 23도, 거실은 21도에 습도는 60% 이게 다 문명의

이기 지열난방 덕분입니다.

옛 어른들의 지혜가 집을 남향으로 지은 까닭을 알게됩니다.

기상청에서 어제 이 곳의 온도가 4도라 하지만 실제로는 양지

바른 거실 앞에는 십이도를 가리키고 있었읍니다.

가끔씩은 서울 친구들이 외딴 시골이 외롭지 않느냐고 걱정을

해주며 서울에는 얼마나 자주 나오느야고 묻곤합니다. 용담골

답변은 그 "공해 구덩이"로는 가고싶지 않다고 입니다.

시골이 외롭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런 곳에서 살아 보아야만

알게되는 정답을 구할 수 있읍니다. 70년대 중반에 유럽의 나라들을

품팔러 다닐 때 보면 시골과 도시의 생활문화 차이를 거의 구별하기

어려워 우리나라도 저러한 시절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더랬지요.

화악산을 정면으로 눈내린 설경을 바라보며 internet surfing을

즐긴다는 건 도심에서의 그 것과는 크나큰 차이라 주장합니다.

소꿉짱 같은 농사가 다 끝난 것 같아도 아직 진행형입니다.

10 평 짜리 비닐 하우스를 세운 뒤로 의성 마늘을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100 여쪽을 심어놓았고 논에서 벼짚 주워다가 덮어

씌우고 그 위에 비닐로 덮어 놓았으니 내년 오월에는 적어도

여섯 접은 수확이 기대됩니다. 물론 비료 주는 거가 아직은

서툴러서 마늘 농사꾼 보다야 못하겠지만 우선 시작이 반이니까

조금씩 좋아질 거라 믿습니다.

오늘은 아직 구름으로 덮여있고영하 3도를 가리키고 있어

오늘은脚湯도 걸러야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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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
2010. 11. 2. 12:17 一石 컬럼

어제는 용담골 건축물 등기부 등본을 만들기 위해 화천

등기소 들렸읍니다. 주문사항이 제법 많이 있었읍니다.

건축물 대장 각 건물별로 한 통씩, 주민등록 초본, 등록세

납부 증명, 도장, 증지 건물 당 만 사천 원 - 군청으로 가서

주차를 하는 자리가 은행 나무 바로 밑이었는데, 이게 웬일

인지 은행이 아주 많이 떨어져 있었읍니다. 주어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읍니다.

내자와 함께 차 안에 있던 봉지에 주어 담다가 담다가 나는

구비서류를 준비하여 다시 등기소로 가서 등기 신청 서류를

작성 다 제출하고 나니까 건물 세 체의 도면을 그려내라

합니다.

다른 서류는 모두 본인 확인을 하고나서 싸인으로 제출이 되지만

집 세 체의 도면은 본인이 그려서 꼭 도장을 찍어야 한답니다.

다시 군청 근처에 있는 도장 집에 가서 삼천 원짜리 막 도장을

새기게 되었읍니다. 도장쟁이는 콤퓨터를 켜더니 내 이름을

찍어 넣고는 괜찮은 글씨 체로 위치를 정하고는 도장 재료를

어떤 기계에 넣고는 보턴 하나를 누르니 레이져로 금방 새겨

놓고는 넘겨주는 것입니다.

예전에 도장쟁이와는 차원이 다른 수단이었읍니다. 도장을

가지고 군청에서 은행 줍던 내자와 같이 등기소에 가서

모든 구비서류를 내고 나니 집으로 보내 줄테니 삼천 원의

우편료와 함께 커다란 봉투에 주소 성명을 쓰라합니다.

등기소 마당에는 직원 한 사람이 은행 나무 잎들을 쓸어모아서

커다란 비닐 부대에 넣는 것을 보았읍니다. 나처럼 그 사람은

은행과 은행 잎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였읍니다.

내자가 그 사람에게 그 비닐 부대를 가져가도 되냐니까, 뭐하려

느냐고 묻길래, 은행은 말려서 먹어도 되고 잎들은 작은 농사

지을적에 땅 위에 뿌려놓으면 벌레가 안 생긴다는 잡상식을

말하니까, 그럴 줄 알았으면 며칠 치를 모아둘 것 그랬다고

하였읍니다.

군청 마당에서 주운 은행이랑 등기소의 것이랑 차 뒤에 실으니

냄새가 고약하였지만 내년 농사를 생각하면 아주 즐거운 일이

었읍니다. 대략 은행 열매만 한 말은 족히 되는 양입니다.

복순이는 이제 만 두 달 되는 넘었지만 여섯 달 된

복순이 보다 체중이나 몸집이 더 크기는 하나 체력이나

민첩함에는 영낙없는 아가입니다.

나흘 전에 지어준 犬公屋에서 세 놈이 딩굴며 게닥질

하는 걸 보면 곤 석들이 요순시절을 즐기고 있읍니다.

밤에는 세 놈이 다 같이 큰 집에서 모여 있지만 낮에는

즈네 집 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깁니다.

개집 담장을 1 미터 50짜리로 지어 주기를 다행입니다.

복돌이는 담장을 짚고 일어서면1 미터 20이나 되니까

말입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나오는 玉水의 색깔입니다. 하루 걸러서 이 玉水에 溫湯을

하고 하루 걸러서는 脚湯을 하고 지냅니다. 서투른 歸村생활은 즐겁습니다.

悤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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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
2010. 10. 26. 05:31 一石 컬럼

龍潭골의 早寢은 저녁 8점 전후 아침은 보통 2점 반에서 세점 반

사이에 早起하는 습관은 서울에서 그대로 옮겨다 놓았읍니다.

그래서인지 메일 읽은 시각을 쳐다볼 때에 저녁 9 점 넘어서가

곧 잘 눈에 띄는 건 약간은 신기하게 느끼는 수가 있지요.

해진 후에나 새벽녘에 보이는 것은 멀리 있는 군 부대 가로등 다섯 점, 걔네들이

볼 때에는 내 집 외등 여섯 점 -없던 민가에 외등 켜있는 걸 보는 이들은

즈네 집 생각이 나는 애들도 있을 법합니다.

아침 여섯 점쯤이 되면은 강아지 데리고 운동을 하곤 했으나 이제는

여섯 점 반이라야 먼 동이 트는 여명이 비추고 용담골은 안개 속에

쌓여 있는 걸 멀리서 보면은 구름 속이라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일출 여명이 시작되면 제일 부지런한 애들은 아주 작은 그러나 아주

예쁜 목소리를 가진 새들입니다. 강아지들은 새 소리는 자연의 소리로

받아드리고 있는듯 - 하지만 고라니나 들 고양이들을 보면 즈네들

영역이라고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지요.

용담골에 들어온 복순이는 첫 날 저녁에만 잠시 울었읍니다. 다른 애들이

사흘 씩이나 슬피 운 것에 비하면 걔는 동무가 두 명이나 있어서인지

일찍이 부모를 잊었거나 적응력이 좋은 것인지 생후 두 달도 안된 녀석이

다섯 달 짜리 복실이와 몸무게는 맞먹는 아직 젖살이 통통한 우량견입니다.

여섯 점 반이면 시계의 시보 소리와 같이 멀리서 군인 애들이 애국가를

부르면서 일조 점호를 취하는 것이 들립니다. 그리고는 국민보건 체조하는

구령소리가 나고 이어서 씩씩한 군가와 행진곡이 울려 퍼집니다.

훤해지면은 강아지를 한 마리씩데리고 운동을하는데 복돌이는 이제 여섯

달이 되면서 몸집도 커졌지만 힘이 워낙 세져서 나와 내자는 거의 끌려다느는

형편이 되었읍니다. 얘네들은 즈네들이 사는 땅에는 구석구석 영역표시를

하고다닙니다. 복돌이는 아침 운동시에 소변을 아껴가며 여러 곳에 표시를

하여두지만 다른 애들은 한 번으로 끝내는 성질이 다릅니다.

여덟 점쯤 되면은 웃통 벗은 군인애들이 마치 무슨 특전사 군인애들 처럼

우렁찬 구령과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립니다.

지난 사월에 굴정한 우물의 수질이 특 A급이라는 검사서를 의심하는 일이

잠시 생겼더랬읍니다. 태양열 온수로 자주 목깐을 하는데 커다란 욕조에

물을 받아놓으면 물의 색갈이 옅은 바닷물 색으로 변해 있읍니다. 며칠을

생각하다가 우물 판 친구에게 물 색갈이 이상한데 해발 오백 미터에서

나오는 물에 물감 탄것으로 보이니 이게 뭔 일이냐고 물었지요.

정답을 얻은 것은 물이 워낙 좋으면 그런 색이라하여 이 또한 생활의

즐거운 비타민입니다. 용담골에 오시는 이는 필히 물통을 많이 싣고

오시면 퍼런 물 free of charge입니다.

한 동안 택배다니는 운전수와 싱강이를 하였읍니다. 위치가 어디라고

가르쳐주면 그대로 오면 될 것을 꼭 거기에는 길도 집도 없다는 겁니다.

내집에 와서는 언제 그리 빨리 지었느냐는 우문을 듣고는 합니다.

서울 아파트 20층에서 생활할 때의 체중이 71kg의 과체중이 용담골에

와서 적응하고 나니까 65 kg -40년 전의 몸무게로 돌아온 점이 歸村의

첫 번째 성과입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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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 쿠먼
2010. 4. 20. 15:16 一石 컬럼


용담리 455 번지에 착공을 18일 오전 8 시에 한다하여

신나는 기분으로 용담골에 들어 섰지만 터 고르기 하는

장비가 보이질 않는다.

약이 올라서 시공사 사장에게 전화를 할려니까, 이를 (!)

손 전화를 집에 놓고 온 걸 그제야 알게되었다.

마누라 전화로 호통을 치려니까, 장비가 제발로 화천에서

현장으로 오다가 고장이 났기에 내일로 미루어야 겠다며

내게 전화를 하니 안 받더라는 것 - 그래서 문자로 통지

했다하니 할 말이 없을 수 밖에.

100 미리 관정의 우물은 지난 5일에 파 놓았고 수심만 20미터

가 확인 되었다하니 공사용 가설 전기가 들어와야 겠는데

한전에서 이게 한 달에서 달포가 걸린단다.

시공업자는 물과 전기가 있어야 집터 기초 공사부터 제대로 돌아

간단다. 바로 위에 있는 파프리카 농장 주인을 만나서 내 지번에

전기 들어올 때까지 전기를 사서 쓰게 해달라니까 그 친구

지 동네에 이웃 시촌이 생긴다고 흔쾌히 받아들여 고마웠다.

그리하여 4.19 50주년 기념일에 착공을 하게되어 용담골에

다다르기 전에 사창리에서 건물 위의 음식점 간판 중에 "막국수"를

찾아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이 집이 서울 어디에 갔다 놓아도

흠없는 큼지막하고 깨끗하고 촌구석이라는 티가 없다.

넓은 홀에 평일 점심 시간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내외 뿐 -

벽 곳곳에 방귀 끼고도 남을 서예 작품들이 걸려 있는게 범상치

않았지만 종업원 7여명이 점심을 들고 있다가 그중 졸개인듯

싶은 젊은이가 무얼 들겠느냐고 묻는다.

막국수 하나와 만두국 하나로 (둘이서 반반 먹으려) 주문을 하여

놓고 메뉴 간판을 보니 초등 학생은 셀프 서비스 메뉴가 공짜이고

일반 사람들은 3,000 원 정 - 매우 정갈한 반찬과 밥은 지 마음대로

퍼다 먹을 수 있는 조금은 손님이나 외출 나온 군인들에게 봉사하는

음식점이지 영업 위주의 식당은 아닌게 분명하다.

한 십여분 지나서 다른 종업원이 다가 오더니 막국수 하는 분이

낮술을 조금 하여 못 만들게 되었으니 다른 걸로 주문 하란다.

나도 촌놈이 되려하지만 어딘가 심사가 틀린다. 할 수 없이

만두국 두개로 바꾸고 기다리기로 하였다.

주방장처럼 생긴 머리에 고깔을 쓴 친구가 밥을 다 먹었는지

밖으로 나가면서 나를 힐끗 처다보고 나가더니 바로 옆집의

횡성 한우 고기집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얼마 있다가 그 친구가 샌드위치 두 개를 들고 들어 와서

한 종업원에게 우리에게 갔다주라 하였는지 들고와서

기다리는 동안 드시란다.

일단은 고맙다하고 먹어보니 역시 수준급이다.

알고보니 주방장이 사창리 "뚤레쥬르"도 직접 제빵까지

하는주인이었다.

주방장이 내게 막국수를 누가 먹을 거냐고 시비를 건다.

내가 먹으려 했다하니 지가 직접 만들어 준다하며 막국수를

3대 째 하고 있으니 실력 발휘를 하겠다며 주방으로 들어선다.

별 희안한 친구다. 주인이고 주방장인데 막국수는 지만 만드는

집이고 다른 종업원은 아직 못 배운 모양인지 안 가르쳐 주는지

헷갈리는 집이다.

낮 술먹고 막국수 장사 아니하겠다고 선언했던 친구가 뭔 정신으로

뚜레쥬르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는지, 왜 갑자기 막국수 장사를

하겠다고 변덕을 부렸는지 아리송하였다.

어찌했거나 음식은 일품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슬슬 나도 시비를 건네게 되었다.

여기 저기 있는 서예작품들이 어떠한 연고로 와 있느냐,

대단한 작품들이다라고 건네니, 이 친구가 신명이 난다.

아주 잘 쓴 거는 지 스승의 것들이고 좀 시원찮은 거는

지 솜씨란다. 40 넘어서 서울에 가서 배웠단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이 친구가 가업을 이어가기는

외할머니에게서 아버지에게서 배워 효도하느라 시골에

있는 친구이지 미스테리가 하나 둘이 아니다.

이 집을 찾아오게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 달전에 점심을 먹으려고 사창리를 찾아다니다가

어느 모텔의 옥상에 "막국수" 광고판을 보고 찾아 갔지만

그냥 모텔 뿐이어서 문 닫은 음식점으로 알고 지나쳤는데

어제는 그 모텔의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인듯한 여인에게

왜 막국수 간판만 있고 음식점이 없느냐니까, 이 여인이

밖으로 나와서 그 집까지 친절히 안내를 해주어 들어 가는데

막국수 집은 아니고 제법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참 희안한 그리고 우연한 경우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방장이 내게 어찌 사창리까지 와서 점심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한다.

내 대답은 용담골에 작년에 조그만 땅떼기 하나를 사놓고

둥지를 틀어 한 삼십 년만 살려고 오늘 정지 공사 시작한다

하니, 이 친구가 용담골은 지가 구석구석 알고 있으며 또

풍수지리도 안다며 식당 일 제쳐두고 구경을 시켜 달라고 조른다.

밥 다먹고 그 친구를 모시고 현장에 가보니 장비가 정지 작업을

거의 3/2 가량 하고 있었다. 풍수 좀 읊는 다던 친구가 정말

좋은 땅이란다.

대충 시공사장하고 이야기 하고 주방장을 모시고 그 식당으로 가던

중에 그 친구 왈, 사창리에 하고 있는 영업이 찜질방, 모텔, 횡성 한우

음식점, 뚜레루즈, 킴스 마켓 등등 욕심이 대단히 많은 친구이지만,

지는 뭔가를 베풀어 가며 살고 있단다.

그 친구 나이는 귀골의 55세, 낮술을 좋아하고 내 둥지 상량 대들보에

한자 실력을 발휘 하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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